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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민병선]커피의 사회학

입력 | 2014-02-06 03:00:00


민병선 문화부 기자

서울 시내 중심가에는 한 가게 건너 하나꼴로 커피숍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통계 포털에 따르면 전국 ‘비알코올 음료점업’의 도·소매 사업체 수는 2012년 현재 4만2448곳에 달한다. 비알코올 음료점업에는 커피와 주스 전문점, 찻집, 다방 등이 포함된다. 여기 종사자 수는 11만4465명이고 매출액은 3조2778억 원에 이른다. 직장인들에게 점심 먹고 ‘콩다방’ ‘별다방’ 등으로 불리는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을 찾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됐다.

예전에도 한국인은 차 문화를 즐겼다. 흔히 쓰는 다반사(茶飯事)라는 말은 ‘밥 먹고 차 마시는 일처럼 흔하다’는 뜻이다.

차 문화에 대한 서양의 흥미로운 이론이 있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카페의 증가가 근대 유럽의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기보다 ‘공론의 장’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정보와 생각을 공유하며 사고와 제도의 발전이 일어난 것이다.

하버마스의 이론을 국내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요즘 우리 실정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주변 직장인들은 대개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해 찻집을 찾는다. 상사의 눈을 피할 쉼터로서, 감정노동에 지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찻집을 찾는 것이다.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고립시키기 위해 들른다. 대학생들도 사적인 만남과 리포트 작성을 위해 자주 들른다. 요즘 한국에서 찻집은 숨는 공간이지 소통의 공간은 아닌 것 같다.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은 널렸지만 사람들은 소통을 할 수도, 원하지도 않는다.

이야기를 정치로 돌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래로 불통의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지적을 받았다. 지난달 신년회견에서도 이런 지적은 해소되지 못했다. 딱딱하고 사무적인 느낌의 회견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채널A 박민혁 기자의 “대통령님은 일과 이후에 어떤 생활을 하시느냐”는 질문에 ‘유머로 답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요즘 ○○드라마를 보는 데 참 재밌다. 남자 주인공을 여러분도 좋아하시죠?”라고 답했다면 회견 분위기는 훨씬 부드러워지지 않았을까?

지난달 29일 처음 맞는 ‘문화가 있는 날’에 대통령의 선택은 한국 애니메이션 ‘넛잡’이었다. 미국에서 큰 성과를 거둔 영화를 격려하는 차원에서 좋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변호인’을 봤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인’은 아마도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관객이 많이 찾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변호인’을 봤다면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내편으로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품이 넓은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것 같다.

소통은 듣는 게 먼저다. 내 이야기보다 남의 이야기 듣기가 기본이다. 영화를 본 1000만 명이 넘는 관객에게 귀 기울였다면 불통에 대한 일부의 우려도 불식시키지 않았을까?

민병선 문화부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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