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선 문화부 기자
예전에도 한국인은 차 문화를 즐겼다. 흔히 쓰는 다반사(茶飯事)라는 말은 ‘밥 먹고 차 마시는 일처럼 흔하다’는 뜻이다.
차 문화에 대한 서양의 흥미로운 이론이 있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카페의 증가가 근대 유럽의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기보다 ‘공론의 장’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정보와 생각을 공유하며 사고와 제도의 발전이 일어난 것이다.
이야기를 정치로 돌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래로 불통의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지적을 받았다. 지난달 신년회견에서도 이런 지적은 해소되지 못했다. 딱딱하고 사무적인 느낌의 회견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채널A 박민혁 기자의 “대통령님은 일과 이후에 어떤 생활을 하시느냐”는 질문에 ‘유머로 답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요즘 ○○드라마를 보는 데 참 재밌다. 남자 주인공을 여러분도 좋아하시죠?”라고 답했다면 회견 분위기는 훨씬 부드러워지지 않았을까?
지난달 29일 처음 맞는 ‘문화가 있는 날’에 대통령의 선택은 한국 애니메이션 ‘넛잡’이었다. 미국에서 큰 성과를 거둔 영화를 격려하는 차원에서 좋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변호인’을 봤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인’은 아마도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관객이 많이 찾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변호인’을 봤다면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내편으로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품이 넓은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것 같다.
소통은 듣는 게 먼저다. 내 이야기보다 남의 이야기 듣기가 기본이다. 영화를 본 1000만 명이 넘는 관객에게 귀 기울였다면 불통에 대한 일부의 우려도 불식시키지 않았을까?
민병선 문화부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