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1호를 만나다]<3>檢 역사상 첫 여성 검사장 조희진 서울고검 차장
검찰 역사상 최초의 여성 검사장인 조희진 서울고검 차장검사가 서울고검 14층에 걸린 역대 고검장들의 사진 앞에서 자신 외에 여검사가 한 명도 없었던 초임 검사 시절을 이야기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무슨 직책을 맡든 검찰 내 ‘여성 1호’
여검사로는 처음으로 ‘검찰의 꽃’이 된 조희진 서울고검 차장검사(52·사법연수원 19기)는 초임 검사 시절로 돌아간 듯 설레는 표정으로 25년 전을 돌이켰다.
조 검사장이 실무수습 후 검사를 지망했던 1990년대에는 검찰 조직에 여성 검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조배숙 변호사(사법연수원 12기) 임숙경 변호사(사법연수원 12기) 같은 선배 여성 검사들이 있었지만 검찰에 잠시 근무하다 법원으로 옮겼다.
선후배들은 ‘잘 어울린다’며 응원했지만 ‘여자가 검찰에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떨치지 못했다. 진로를 두고 고민을 털어놓자 사법연수원 교수님들은 “여자라서 검사가 되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 반면 여자라서 받는 특혜도 없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당시 김기춘 검찰총장(현 대통령비서실장)이 사법연수원에 와서 “검찰에 여성이 기여할 부분이 많다”고 강의한 것도 힘이 됐다.
당시 검찰 지원자 82명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었던 조 검사장은 1990년 서울지검으로 발령을 받았다. 28세 여성 사법연수원생의 검사 임관은 당시 큰 화젯거리였다. “주변에서 힘든 길을 택한다고 걱정이 많지만 여성으로서 미개척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필요로 하고 적합한 분야가 있을 것입니다.” 조 검사장이 임관 당시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당당히 말한 목표였다.
“처음 검사실을 배치받아 갔을 때 간부들이 고민해 배려한 흔적이 느껴졌습니다. 검사실 수사관도 실력 있는 분들로 엄선하고 연배도 고려했다는 느낌이었어요. 당시 저희 검사실 수사관들은 ‘(여자)검사님 잘 모시고 있느냐’란 놀림 아닌 놀림도 받았지요.”
처음엔 남자 선배들도 배려 고심
결국 조 검사장은 남자 동기들보다 6개월 늦게 ‘첫 여성 공판검사’로 발령받았다. 공판부에 가고 싶다고 지원한 끝에, 단기 유학을 간 선배 검사가 후임자로 추천해서 겨우 얻은 자리였다. 이후 법무부 여성정책담당관(1998년), 부장검사(2004년), 사법연수원 교수(2005년), 지청장(2010년)까지 조희진이 가는 자리에는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최초’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야 여성 후배들에게 좋은 선례가 된다는 부담이 컸다. 평생 보람이자 부담이 된 이 수식어는 조희진이 20년 넘게 검찰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됐다. 여성의 시각으로 사건을 새롭게 바라보고 새로운 정책을 제안했다.
2001년 동부지청에서 근무할 때 필리핀 여성 근로자 성폭행 사건이 배당됐다. 한국인 사장이 필리핀 여성을 성폭행해 고소당한 사건이었다. 경찰은 사건 당시 함께 있었다며 사장의 알리바이를 입증해준 친구의 말을 듣고 무혐의 처리해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기록을 보면서 여성 특유의 직감으로 피해 여성의 진술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전화 발신 추적 결과 사장과 친구가 사건 발생 시점에 서로 동떨어진 장소에 있었다는 걸 밝혀내자 그때서야 사장은 자백했다.
일보다 가정 때문에 검찰을 떠날 뻔한 위기가 있었다. 임관 후 얼마 안 돼 아들을 낳고 건강이 갑자기 나빠진 것. 수술과 입원을 반복하면서 얼굴이 몰라보게 수척해졌다. “건강이 우선이니 일을 그만두고 몸을 챙기라”는 주변의 조언에 마음이 흔들렸다.
“딱 2년만 제대로 검사 생활을 해보고 그만두고 싶다고 속으로 기도를 했었어요. 그 기도 때문인지 그 후로 20년 넘게 검사생활을 하고 있네요.”
사표를 써야 할까 고민될 때마다 마음을 잡아준 것은 남편(송수근 문화체육관광부 국장)과 친정어머니였다. 남편은 출산 후 몸이 아플 때 아이를 힘든 내색 없이 돌봐줬다. 미국 뉴욕문화원으로 발령받아 갈 때도 조 검사장이 함께 갈 수 없어 남편 혼자 아들을 돌봤다. 또 친정어머니는 집안일과 육아를 도왔다. 두 사람이 없었다면 진작 검찰을 떠났을지 모른다.
25년간 검찰에 있게 된 건 행운
“몸이 아프거나 로스쿨에서 좋은 제안을 받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가 (첫 여성 검사로) 과분한 혜택을 받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받은 기대와 검찰 후배들, 검사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 그때마다 마음을 돌렸어요.”
또 한 번의 고비는 지난해 검사장 승진을 앞두고 찾아왔다. 전체 검사 중 여성의 비율이 25%에 달했고 아동·여성 사건뿐만 아니라 특수 공안 강력 사건으로도 활동 범위가 넓어졌지만 검사장은 한 명도 없었다. 여성 검사장이 나와야 한다는 여론이 검찰 안팎에 형성됐지만 지난해 4월 발표된 검사장 승진 대상자 이름에 ‘조희진’은 없었다. 먼저 승진한 연수원 동기들은 재작년 이미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제 정말 그만둘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선후배들이 만류했다. “어디든 검찰에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논리였다.
늘 과분한 혜택 받고 산 것 같아
특히 검찰 조직에 멘토가 될 여성 선배가 있다는 것에 용기를 얻는 후배들도 있었다. 조 검사장의 후배인 한 여성 검사는 “연차가 쌓이면서 선배 여성 검사들이 개척한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며 “여성이라 구색 맞추기로 발탁됐다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등 여성계 인사들과 법조계 선후배들도 힘을 보탰다.
여성 검사장이 탄생한 후 지난달 발표된 검찰인사위원회 결정 내용 중에 눈에 띄는 내용이 담겼다. 대검찰청에 여성 검사가 7명이나 발령을 받았다. 일선 검찰청의 차장과 지청장으로 나간 경우도 꽤 있었다. 조 검사장은 후배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이제는 여성끼리도 경쟁하는 시대가 됐어요. 여성 비율이 높아지면서 서로 고민을 나눌 상대도 많아졌지만 경쟁도 치열해진 겁니다.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전문 분야를 키워야 인정받을 수 있을 겁니다.”
서울고검 14층 회의실 오른쪽 벽에는 역대 서울고검장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현재 재임 중인 국민수 고검장까지 벽에 걸린 역대 고검장 45명은 모두 남자다. 국 고검장 사진 옆에는 차기 고검장을 위한 빈 액자가 걸려 있다. 조 검사장에게 역대 고검장들 사진 앞에서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조 검사장처럼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여성 후배가 늘어나면서 언젠가는 빈 액자에 최초의 여성 고검장 사진이 담길 날도 올 것이다. 조 검사장이 빈 액자 앞에서 환하게 웃었다.
▽약력
1981년 서울 성신여고 졸업
1985년 고려대 법학과 졸업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 합격
1990년 사법연수원 수료(19기), 서울지검 검사 임관
1998년 법무부 여성정책담당관
2004년 의정부지검 형사4부장
2005년 사법연수원 교수(검찰실무, 국제형사법 연구)
2008년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장
2009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차장
2010년 대전지검 천안지청장
2013년 검사장 승진, 서울고검 차장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