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발을 들이면 빠져나오지 못하고 끝없이 빚을 지게 되는 게 바지사장의 비정한 세계다. 바지사장 일을 맡았다가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류상식(가명) 씨가 지난달 22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수원역 2층을 찾았다. 그는 지난해 이곳에서 바지사장 브로커를 만났다. 수원=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1994년식 엘란트라 뒷자리에서 박민수(가명·31) 씨가 눈을 떴다. 유리창에 새벽이슬이 맺혀 있었다. 박 씨는 옆자리에 잠들어 있는 아내를 보다가 차 밖으로 나왔다. 담배 3대가 금방 타들어 없어졌다. 결심한 듯 휴대전화 키패드를 눌렀다.
“승용차에서 먹고 잔 지 한 달째입니다…. 전에 말한 주유소 ‘바지’ 자리는 연락 없나요?” 박 씨가 문자메시지를 보내자 2시간 후 브로커 A 씨가 왔다. A 씨는 “라면이라도 사먹으라”며 1만 원짜리 3장을 던지고 갔다. 브로커들은 바지사장들이 죽지 않을 만큼의 돈을 간간이 쥐여준다. 박 씨가 ‘바지사장’의 늪에 빠져 월세 보증금까지 압류당했던 지난해 5월 이야기다.
지난해 1월 박 씨는 친구 소개로 설비업체 대표 B 씨(30)를 만났다. B 씨는 급전 3000만 원을 해결해주면 수십억 원 규모의 설비공사 사업에 끼워주겠다고 제안했다. 그 전에 과거 공사 잔금을 일부라도 해결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며 딸 셋을 키우고 있던 박 씨에게는 ‘인생 역전’의 기회였다.
B 씨가 당초 약속했던 공사 시작일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대출 이자는 쌓여갔다. ‘딱 한 번만 더 하자.’ 이번에는 전세 대출에 생각이 미쳤다. 브로커가 물어온 주택에 전세로 입주할 것처럼 꾸며 전세금을 대출받는 방식이었다. 이마저 뜻대로 풀리지 않아 월세방을 빼야 했다. 어린 세 딸을 처가에 맡기며 박 씨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6월 브로커 A 씨로부터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주유소 3곳에 바지사장으로 앉아있으면 8억 원을 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숨이 턱 막혔다. 그동안 쌓인 대출 이자는 물론이고 공사 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로비 자금까지 확보할 수 있는 기회였다. 착수금을 요구하는 브로커의 말에 덥석 아내 명의로 대부업체에서 700만 원을 빌렸다. 하지만 착수금을 챙긴 A 씨는 휴대전화를 없애고 그대로 사라졌다.
공사판에 나가고 싶어도 안전화 살 돈 3만 원을 빌릴 곳이 없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장모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우리 딸과 이혼해주게.” 지난해 11월 결국 박 씨는 또다시 ‘바지’로 나섰다. 인천과 경기 성남시 분당구 2곳의 유흥주점이다. 나중에 부가가치세를 내는 조건으로 계약금 300만 원에 매달 100만 원을 받는다. 세금이 1000만 원이 될지, 1억 원이 될지 모르지만 당장 버티기 위한 돈 100만 원이 급하다.
‘다시는 바지사장 하지 말아야지.’ 박 씨의 결심은 굳다. 3000만 원이 필요해 돈을 빌리기 시작했으나 바지사장을 시작하고 1년 만에 빚이 1억 원으로 불었다. 하지만 다짐 앞에는 기약 없는 단서가 붙는다. ‘이번까지만 하고….’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박 씨의 ‘돌려막기’가 끝없이 반복된다.
개미가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친다. 다 나왔다고 생각한 순간 머리 위로 모래가 쏟아져 다시 굴러떨어진다. 개미귀신이 아가리를 벌려 개미를 덥석 문다.
“이봐, 류상식(가명·39). 우린 당신 신상 정보를 다 가지고 있어. 계속 까불면 집으로 찾아갈 거야. 요즘 청부업자들 못하는 게 없는 거 알지.”
류 씨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전화는 이미 끊겨 있었다.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낮은 음성이었지만 바지사장 브로커와 한패라는 건 확실했다. 브로커가 구인 사이트에 올린 바지사장 모집 글에 “사기꾼”이라고 댓글을 단 것이 화근이었다.
지난해 급전이 필요했던 류 씨는 12월 경기 수원역에서 한 20대 여성 바지사장 브로커를 만났다. 류 씨는 처음에는 브로커가 시키는 대로 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주민등록증에 자신의 사진을 붙이고 그 사람의 명의로 통장을 만들었다. 주문은 점점 수상해졌다. 위조한 신분증으로 신용카드를 발급받고 휴대전화까지 개통하라는 말에 류 씨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손을 뗐다. 브로커와 연락도 끊겼다. 하지만 이미 경찰의 수사 선상에 오른 뒤였다. 체포된 류 씨는 난생처음 유치장에 갇혀 48시간 동안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무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브로커가 올린 글에 댓글을 달며 도발하기 시작한 게 이때였다.
협박 전화를 받은 지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한밤중에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 살려…. 나 살려.” 숨넘어가는 목소리였다. 류 씨가 경찰에 신고한 뒤 집으로 달려가 보니 안방 유리창이 열려 있고 바닥에 온통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인기척을 듣고 아들과 경찰에게 전화한 어머니는 다행히 무사했다. 브로커의 경고였다. 류 씨는 빠져나올 수 없는 덫에 걸려들었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갓 세상으로 나온 어린 개미 앞에 구덩이가 있다. 안에 놓인 과자 부스러기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개미지옥 옆을 서성이는 어린 개미의 걸음이 위태하다.
이용현(가명·23) 씨는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급 5000원을 받는 평범한 대학 1학년 휴학생이었다. 친구 소개로 사설 스포츠토토에 손을 댄 것이 몰락의 시작이었다. 평생 느낀 적 없는 짜릿함에 심장이 뛰었다. 판돈이 커졌다. 1만 원, 5만 원, 30만 원…. 정신을 차려 보니 아버지의 자동차를 담보로 대부업체에서 1800만 원을 빌린 뒤였다. 사실대로 고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독촉장이 날아오기 시작하자 빚을 한 방에 갚을 수 있는 일감을 찾기 시작했다.
9월 경북 포항시에서 만난 장기 매매 브로커는 “너무 어려서 신장 빼가기는 좀 그렇고…”라며 휴대전화 ‘내구제’를 권했다. 고가의 스마트폰을 할부로 구입한 뒤 업체에 되팔아 현금을 돌려받는 일종의 무등록 대부업이었다. 하지만 브로커는 이 씨가 개통한 스마트폰 3대를 챙겨 달아났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빚만 400만 원 더 늘어났다.
그때 구인 사이트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정보기술(IT) 업종, 업무 사이트 운영, 해외 파견, 월 200만 원.’ 중국 칭다오(靑島)로 건너가 사설 스포츠토토 사이트에 경기 일정을 등록하고 도박꾼들에게 사이버머니를 환전해주는 일이었다. 명백한 불법이었다. 중국 공안에 붙잡히면 7년 옥살이를 해야 한다는 말이 돌았다. 하지만 빚이 쌓인 상태에서 사기까지 당해 눈이 어두워져 있던 이 씨는 브로커가 마련해준 관광 비자를 들고 지난해 11월 칭다오행 비행기를 탔다.
132m²(약 40평) 정도 되는 아파트에서 이 씨 또래의 남성 5명이 24시간 교대로 컴퓨터에 달라붙어 있었다. ‘관리실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40대 남성은 이 씨 같은 아르바이트생들이 외출할 때 항상 따라나서 감시했다. 전화도 엿들었다. 이 씨는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한 달 만에 귀국했다.
대학에 복학할 날이 점점 다가왔지만 등록금을 벌기는커녕 대출이자만 쌓여갔다. 위험한 돈벌이는 절대 하지 않겠다던 다짐은 점점 희미해졌다. 이 씨는 바지사장을 구한다는 글에 댓글로 휴대전화번호를 남기기 시작했다. 일주일 만에 브로커 30여 명이 연락해왔다. 휴대전화 대리점에 명의를 빌려주면 3개월 동안 3000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도 있었다. 지난해에 일했던 칭다오의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도 “다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연락이 오고 있다.
지금 이 씨 앞에 두 갈래 길이 있다. 맞은편 길에서 손짓하는 브로커들의 말이 달콤하게 들린다. 어느 길을 택하든 후회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이 씨는 왔던 길로 되돌아갈 생각을 못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으면 지난 기획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재산을 소유하거나 사업체를 경영하지 않으면서 명의만 빌려주고 그 대가를 받는 이들을 일컫는 속어. 유흥업소 사설도박장 탈세조직 은행대출 부동산임대차계약 등 분야가 다양하다. 수사 및 세무 당국에 적발되면 민형사상 책임을 대신 지고 옥살이를 할 때도 있다. 어디에서 온 말인지는 불분명하다. △총알 ‘받이’ △“도저히 내어 줄 수 없거나 양보할 수 없는 자신의 모든 것까지 다 넘겨준다”는 뜻의 관용구 ‘바지까지 벗어 주다’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키는 ‘핫바지’ 등이 어원으로 추정된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오소영 인턴기자 한양대 교육공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