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만나는 詩]
‘폰’은 시인이 서양장기 체스에서 8개가 한 벌을 이루는 졸개 말에서 시상을 떠올려 쓴 시다. 시인은 “한정된 판 위에서 오직 전진만 가능하고 대각선에 있는 상대 말만 공격할 수 있는 법칙에 매여 있고, 그 법칙을 벗어나면 즉시 반칙이 되는 운명의 폰이 우리 삶의 모습과 무척 닮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시인의 설명을 듣고 보니 이번 시집엔 ‘체스’나 ‘체크 메이트’, 또는 ‘죽은 말은 다시 사용할 수 없다’처럼 체스에서 길어 온 듯한 시 제목이 유난히 자주 눈에 뜨인다.
추천위원인 김요일 시인은 “경쾌한 리듬, 투명하지만 깊은 상처로 아프게 버무려진 이 시집 속의 파편들은 우리가 아직 냄새 맡지 못한 우리 시의 새로운 미학으로 오래 전시될 것이다”라고 평했다. 손택수 시인은 “파악된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파악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미지의 영역으로 자신을 추방한 자의 시선이 외따롭다. 시는 늘 변경으로부터 변경을 선포하는 방식으로 생생해진다는 걸 알겠다”고 평했다.
장석주 시인은 나희덕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문학과지성사)을 추천하며 “나희덕의 시들은 항상 맑고 담담하다. 담담함은 신산고초를 다 끌어안고 삭이며 스스로 깊어짐의 결과인데, 이 담담함에 모성의 지극함과 여성의 다감함이 겹쳐져 깊이를 만든다”고 썼다.
이건청 시인은 강해림 시인이 7년 만에 낸 세 번째 시집 ‘그냥 한번 불러보는’(시인동네)을 추천하며 “소멸됐거나 파멸된 것들 속에서 근원을 투시해내는 강한 정신을 만난다. 그리고 현격하게 다른 층위의 이미지들이 결합된 시편들이 돌발적 광휘를 창출해 보여준다“고 했다.
이원 시인의 선택은 신경림 시인이 6년 만에 낸 시집 ‘사진관집 이층’(창비)이었다. “그 흔한 비유나 수사 하나 없는 간명한 시편들이다. 이 ‘순진무구’로 가난과 과거를 복원시킨다는 점은 더 경이롭다. 시인의 맥박과 언어의 박동 수가 늘 일치하고 있었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