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두 갑오년 1894년과 2014년…그리고 한반도
1894년 고종이 스케이팅 파티를 연 경복궁 향원정의 요즘 모습. 동아일보 DB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1858~1902)가 발행한 영어잡지 '더 코리안 리포지토리'의 1895년 2월호에 실린 기사다. 스케이팅 파티가 열린 1895년 1월 17일, 21일은 음력으로 환산하면 1894년 12월 22일과 26일이다. 1894년이 구한말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연초 동학농민운동을 시발로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갑오개혁, 청일전쟁 등 격동의 한 해였다. 결국 일본이 승자가 되면서 조선은 국권을 잃는 길로 들어선다. 이런 어수선한 시국에 고종은 왜 '스케이팅 파티'를 잇달아 열었을까.
1894~1897년 한국을 네 차례 방문한 영국 지리학자 비숍 여사(1831~1904)의 기록은 당시 왕실의 분위기를 읽는데도 도움을 준다. 비숍 여사는 이 땅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조선인의 삶을 취재해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책에 생생히 담았다.
● 사실상 가택연금 '왕과 비'
●떨어진 국왕의 위상 '거둥의 정치학'
3월 초 서울에 첫발을 디딘 비숍 여사는 "지금까지 본 가장 진기한 광경"인 왕의 행차 '거둥(擧動)'을 목격한다. 비숍 여사는 "15만 명을 헤아리는 엄청난 군중들"이 어가가 지나가는 "종로대로 양쪽에 12줄을 이루어 서서" 진심으로 왕실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데 깊은 인상을 받는다. 또 "지구상 어디에도 비슷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 장관"에 흥분한다. 이때 고종은 붉은 옷을 입은 40명의 수행원이 메고 있는 높고 휘황찬란한 가마(연)를 타고 있었다.
그러나 비숍 여사가 9개월 만에 다시 본 행차는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스케이팅 파티 열흘전인 12월 12일, 고종은 일본의 강압으로 종묘에 나아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과 홍범14조를 선포했다. 그러나 이날의 '거둥과 비슷한' 행차 모습은 자주독립선언을 무색하게 만들었고 쇠락한 국왕의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비숍 여사는 "단 네 명이 멘 양쪽에 창을 낸 평범한 목재 가마를 타고 있었고, (고종은) 창백하고 낙담한 모습이었다"고 안타까워한다. "왕세자도 이와 비슷한 가마를 타고 뒤따랐다." 반면 일본 경찰의 특별경호대를 거느린 "친일내각 대신의 위풍당당함은 국왕의 위엄을 능가하고 있었다."
1894년 고종이 스케이팅 파티를 연 경복궁 향원정의 요즘 모습. 동아일보 DB
고종과 명성황후는 때로 이들을 개인적으로 불러 친분을 쌓는 한편, 각국의 제도 풍습 등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와 관련해 "미국 여선교사 스크랜턴 부인, 언더우드 부인이 왕비를 알현했다"고 '더 코리안 리포지토리'는 보도하고 있다. 비숍 여사에겐 영국의 관리등용 제도와 귀족들이 어떤 권리를 가졌는지, 왕과 내각의 관계는 어떤지 자세히 묻기도 했다. 명성황후는 특히 "왕비의 개인적인 경비를 내각에서 제재할 수 있는지, 왕비가 장관을 해임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이렇게 고종과 명성황후는 권토중래의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명성황후는 러시아의 도움으로 잠깐 권력을 다시 잡는가 하더니, 을미년에 일본 낭인들에게 무참히 살해됨으로써 그 꿈은 끝내 좌절한다. 한편 이날 '향원정 파티'를 보도한 '더 코리안 리포지토리'의 기자이자 편집을 맡았던 호머 헐버트 박사(1863~1949)는 후일 고종의 외교고문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게 된다.
●향원정은 한국 스포츠외교의 발원지?
향원정 '스케이팅 파티'. 그때로부터 120년이 흘렀다. 경복궁 작은 연못에서 출발한 고종과 명성황후의 '스포츠 외교'는 한국의 국력 신장과 함께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한국은 88올림픽, 2002월드컵, 2011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치르고 2018겨울올림픽까지 유치함으로써 스포츠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스포츠외교'의 강국이 되었다.
8일부터 러시아 소치에서 겨울올림픽이 열전에 돌입했다. 향원정에서 마냥 신기하게만 바라보던 그 스케이팅 종목에서 한국은 대거 금메달을 노린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대회에서 한국은 빙상에서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2개를 따내 종합순위 5위를 달성 한 바 있다. 한국은 이미 120년 전의 한국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정치지형은 비슷하다는 말도 무시할 수 없다. 얼음판 위의 성적은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