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
구로사와 아키라 지음·김경남 옮김/356쪽·1만6800원·모비딕
日영화 거장의 속살 오롯이…

“천사처럼 담대하게, 악마처럼 집요하게.” 이를 영화인생의 모토로 삼았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왼쪽)은 유럽과 할리우드 영화계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칸 국제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인 ‘가게무샤’(1980년) 촬영장을 찾은 프랜시스 코폴라(가운데) 감독과 조지 루커스 감독. 모비딕 제공
이 자서전도 일본 현지에 단행본으로 나온 때가 1984년이니 국내에서 번역되기까지 30년이 걸린 셈이다. 그의 영화와 자서전을 비롯해 모든 콘텐츠의 저작권을 미국 출판사 크노프의 구로사와 프로덕션이 보유하고 있어, 이 사실을 수소문해 판권 계약을 하는 데만도 1년 반이 걸렸다고 한다.

두 번째 작품 ‘가장 아름다운 자’(1944년)는 공장에 동원된 여성 자원봉사대의 얘기다. 그는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여배우들에게 화장을 지우고 영화 배경인 공장 기숙사에서 일반 여공들과 똑같이 먹고 자면서 매일 8시간 넘게 일하게 했다.
‘추문’(1950년)의 ‘실패’는 등장인물에게 끌려다녔기 때문이라고 적는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살아 있어 작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저절로 연필이 미끄러지듯 그의 삶을 쓰고 있었다.”
전시 내무성 검열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선 노 감독의 분노가 지면을 뚫고 나올 듯하다. 생일 케이크가 나와도 미국적이라며, 여자의 무릎만 보여도 외설적이라며 잘랐다. 전후엔 영화사 노조의 발언권이 강해 배우 채용 심사도 하고, 시나리오도 심의해 그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그는 평생 30편의 영화를 찍고, 89세를 일기로 죽기 3년 전까지 시나리오를 썼다. 하지만 자서전은 11번째 영화 ‘라쇼몽’에서 끝난다. 일본 감독이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린 첫 작품으로, 하나의 사건에 대해 등장인물들이 전혀 다른 증언을 하는 줄거리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