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내 친구]
꽁꽁 얼어붙은 투자심리… 은행 예금 잔액 100조 돌파 (동아일보 1월 7일자 B2면)
대공황 시기 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의 최연소 거물 투자자 에릭 패커를 다룬 영화 ‘코스모폴리스’의 한 장면. 주가 대폭락에서 비롯된 대공황은 경제 주체들의 심리가 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동아일보DB
○ 심리의 중요성
주가가 폭락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투자자들이 공포에 질렸다는 게 가장 컸습니다. 주가가 급락하자 투자자들은 당황했고 앞다퉈 매물을 쏟아내며 주가 폭락을 더 부추겼습니다. 미국의 주가 폭락으로 불안해진 세계 투자자들은 매물을 쏟아냈고 세계 각국의 주가는 동반 폭락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튤립 파동, 1929년 미국 월가 대폭락에서 비롯된 대공황,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등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들입니다. 경제 주체들의 심리가 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면 좀더 일반적인 상황을 생각해 볼까요. 한국은 민간소비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고, 미국은 이 비중이 70%를 웃돕니다. 소비자의 심리 변화가 경기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결코 작지 않은 것이죠.
또 소비자의 심리는 기업의 투자에도 영향을 줍니다. 소비자들의 심리가 살아나 실제로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면 기업들의 투자 심리도 살아나 기업 투자가 실제로 늘 것입니다. 이는 다시 소비자들의 심리를 더욱 낙관적으로 만듭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는 경제 주체들이 모두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합니다. 그런데 케인스학파 창시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기업가의 확신과 직감 같은 심리적 요인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경기변동 원인을 설명하면서 “불확실한 상황에서 투자는 기업가의 직감에 의존해 결정되며, 이 같은 투자의 불안정성 때문에 경기가 변동한다. 인간의 의지는 계산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야성적 충동의 결과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많은 연구자들이 경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경제 주체들의 행동과 심리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행동경제학’이 득세하기 시작한 것이죠. 2002년에는 대니얼 카너먼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교수가 심리학자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행동경제학을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경제 주체들의 심리는 어떻게 파악할까요. 일반적으로 소비자나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지수로 만들어 산출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경제심리지표로는 한국은행에서 매달 발표하는 소비자동향지수와 소비자심리지수, 기업경기실사지수, 경제심리지수가 있습니다. 경제심리지수는 소비자와 기업을 포함한 민간의 경제 상황에 대한 심리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소비자동향지수와 기업경기실사지수를 합성한 심리지표입니다. 이 밖에도 IBK기업은행이나 전국경제인연합회 같은 비정부기관에서도 기업경기실사지수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경제 주체들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 여러 지표를 만들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민간 조사단체인 콘퍼런스보드가 발표하는 소비자신뢰지수(CCI), 미시간대와 톰슨로이터가 공동으로 발표하는 소비자심리지수(CSI)가 있습니다. 이 지표 결과에 따라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의 주가지수가 등락할 만큼 중요한 지수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상엽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올해는 그동안 위축되었던 경제 심리가 풀리면서 경기 회복의 선순환에 들어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상엽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