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9일 일요일 흐림. 진심 혹은 대담, 흐릿한 경계선.#95 Robin Thicke ‘Blurred Lines’(2013년)
세 번째 솔로 EP를 낸 가인. 에이팝엔터테인먼트 제공
표절은 아니다. 주요 멜로디가 똑같지도 않고 원작자가 문제 제기를 한 것도 아니니까. 근데 도입부의 카우벨(소의 목에 거는 방울에서 유래한 타악기) 소리부터 심상찮다. 서로 다른 음색과 리듬으로 좌우 채널에서 스테레오로 연주되는 이 소리는 ‘틱 틱 티틱 틱 틱’ 하는 당김음의 강한 인상과 함께 곡의 흥을 돋우는 중요한 장치로 기능한다. 리듬이 미세하게 다르긴 하지만, 유별난 중독성을 자아내는 음악적 장치가 이렇게 비슷한 색깔과 비중으로 배치돼 있다니.
골격도 닮았다. ‘블러드…’는 G-D를, ‘진실…’은 A-D를 오가는 화성 진행이 골자다. ‘표정’은 다르지만 ‘얼굴’은 비슷하다. 전자의 ‘레파솔, 레파솔’, 후자의 ‘미솔라, 미솔라’로 상승하는 베이스 라인이 블루스, 솔에서 즐겨 쓰는 패턴이라고 해도, 이게 앞서 말한 카우벨 연주와 맞물리는 모양새랑 곡의 템포까지 감안하면 뼈대가 같은 두 건물을 보는 것 같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풍선까지 같은 데서 맞춘 듯하다.
“외국 곡 가져다 조금씩만 바꾸면서 베끼기 수준으로 만들어내는 관행이 낳은 케이팝의 어두운 단면이 보여요. 오마주는 원곡을 아는 이가 변형된 곡을 듣고 쾌감을 느껴야 유효해요. 창작자가 오마주란 사실을 먼저 밝혔어야 하고요. 우리나라 창작자들 자존심까지 무감각해진 것, 이건 표절보다 더 심각한 문제거든요.”
나 어떡하지.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