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경제부 기자
회의 시간에 메모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전산 분야에서 10년 넘게 일한 A 씨는 공책 필기가 낯설기만 하다. 얼마 전까지는 노트북 PC를 갖고 다니며 메모할 내용을 기록하거나 회의 때 나온 내용을 프로그램에 반영했다. 하지만 신용카드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한 이후 불가능해졌다. 회사 측이 ‘보안 강화’를 이유로 협력업체 직원들의 노트북에 쇠사슬을 매달아 책상과 연결한 뒤 자물쇠로 잠가 버린 것이다. “자물통에 묶인 노트북을 보고 있으면 서글퍼요. 내 손에 수갑을 채운 느낌이랄까요.”
또 다른 금융사의 전산 외주업체 직원 B 씨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회사 측이 정보 유출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며 인터넷 접속을 아예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B 씨가 맡고 있는 웹 디자인 업무는 고객정보 같은 민감한 데이터를 다룰 일도 없고 업무 특성상 인터넷 접속이 필수이지만 회사 측은 “예외는 없다”며 B 씨의 인터넷 접근을 막고 있다. B 씨는 이 회사에서 스마트폰조차 이용하지 못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업무 처리가 늦어진 B 씨는 결국 집에서 밤새우며 일을 처리하다 2∼3시간 눈을 붙이고 출근길에 나선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를 벌이고 있는 의원들의 ‘황당’ 발언도 문제다. 7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조사에서 한 의원은 카드업체 관계자에게 “비밀번호와 카드 뒷면 세 자릿수 인증번호(CVC 코드)가 유출되지 않았다는 것을 왜 언론에 알리지 않았느냐”고 몰아 세웠다. 1월 초 사태가 터진 뒤 모든 언론이 ‘비밀번호와 CVC는 안 털렸다’고 보도했는데 말이다. 또 다른 의원은 며칠 전 새로 취임한 사장에게 “왜 인사상 책임을 지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해당 카드사 사장은 이미 물러난 상태였다.
카드정보 유출 사태가 터진 지 한 달이 됐다. 쇠사슬로 PC를 묶어 놓은 금융회사, 대통령의 지시가 나오자 ‘늑장’ 현장점검에 나선 금융당국, 한 달이 지나도록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의원들을 바라보며 국민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 문제의 원인을 차분히 분석하고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는 모습을 우리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이상훈 경제부 기자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