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룡(1966∼ )
화탕지옥에서 사우나로 땀 빼고 나오자 땀 쭉 빼고 나오자
쌀이시여 살아생전 사사건건 도와주신 쌀이시여 땀 쭉 빼고
나와서 내게 사사건건 밥이 되어주신 슬픔이시여 그렇지요 왜 그리
슬픔이었는지요 쌀이시여 당신이 흩어질까 두려웠지요 어머니는 밥이 된 당신
푹 익은 보리쌀 위에 얹어 뜸을 들이면 당신은 겸손하여 보리밥 속으로 묻히려 하지만
어머니의 닳아빠진 정교한 나무 주걱 살며시 떠올리면 새하얀 왜 그리 슬픔이지요 할머니의 밥이
가족 모두의 밥이 될 수 없었음 아니에요 할머니의 밥이
할머니의 밥이 될 수 없었으므로 내 밥이었으므로 어머니가
나무라셨지요 할머니는 손자들의 밥이었으므로 할머니 자다가 돌아가심
쌀이시여 죽음도 밥이지요 당신에겐 죽음이야말로 진정한 밥이지요
화탕지옥에서 아 우리 집 화탕지옥에서 젊어 떠나버린 할아버지
땀 있는 대로 빼고 떠나신 할머니 무쇠솥에 절하옵니다 쌀이시여
밥통에게 절하옵니다 사우나탕 절 받으시옵소서 땀이시여 떠나가는
혼들의 도포자락 밥이옵니다 땀 쭉 빼고 나오자 그 신사는 뚱뚱한 잠이 들었다
‘빵만 있으면 어지간한 슬픔은 견딜 수 있다.’ 우리 동네 이웃 골짜기에 있는 빵집 ‘베이커스 테이블’ 벽에 붙은 글귀다. ‘돈키호테’ 작가 세르반테스의 명언이라는데, 빵집 주인의 센스가 감탄스럽다. 빵이여, 밥이여, 빵이나 밥을 목구멍으로 넘겨야 숨을 잇는 목숨이여. 빵의 슬픔이여, 밥의 슬픔이여!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