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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이산가족 후손, 南가족 상대 ‘유산 소송’ 줄이을듯

입력 | 2014-02-11 03:00:00

법원 “北자손 몫, 시효 지나도 줘야”




1950년 중학생이던 이모 씨는 6·25전쟁이 터지면서 그해 9월 북한으로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고 1977년 법원으로부터 실종 선고를 받아 호적에서 말소됐다. 1961년 이 씨의 아버지가 사망하자 충남 연기군에 있는 선산은 생사가 불분명한 이 씨를 제외하고 어머니와 4남매 등 5명이 분할 상속받았다. 북한에 생존해 있던 이 씨는 2004년 5월 중국에서 동생과 만나 살아있음을 가족에게 알린 뒤 2년 후 사망했다.

이 씨의 딸은 탈북해 2009년 한국에 입국했고 지난해 11월 법원으로부터 아버지의 실종 선고 취소 판결을 받았다. 또 법원에 자신이 이 씨의 친딸이란 증거로 함께 찍은 사진을 제출했고, 중국에서 형을 만난 이 씨의 동생도 사진 속 남성이 자신의 형이 맞다고 진술했다.

이 씨의 딸은 아버지가 상속받았어야 할 재산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고 법정에서는 37년 전 실종 처리된 이 씨가 유산 상속 자격이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특히 2012년 5월 시행된 ‘남북주민 사이의 가족관계와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 11조와 민법 조항 중 어떤 것을 적용해야 하느냐가 핵심이었다.

특례법 11조는 ‘남북 이산으로 인하여 피상속인인 남한 주민으로부터 상속을 받지 못한 북한 주민(북한 주민이었던 사람을 포함) 또는 그 법정대리인은 민법 제999조 제1항에 따라 상속회복청구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하지만 민법 제999조 제2항은 ‘상속회복청구권은 상속권을 침해받은 뒤 10년이 지나면 소멸된다’고 규정했다. 이 조항을 근거로 이 씨의 친척들은 “1977년 실종 선고돼 상속권이 사라진 만큼 소송 기한이 지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 씨 딸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을 내린 서영효 판사는 “분단이라는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민법을 적용하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상속을 제때 받을 수 없었던 북한의 상속인은 사실상 상속권을 박탈당하는 결과를 고려해 특례법이 제정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분단이 장기화되면서 상속권이 침해된 지 10년이 지난 경우가 허다할 것”이라며 “특례법이 제정된 배경을 고려해 남한 민법에 따른 10년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북한에 있어 생사불명이라는 이유만으로 재산 상속에서 제외할 수 없다는 판례는 1982년 처음 나왔다. 이후 2009년 북한에 거주하는 윤모 씨(72) 등 4남매가 대리인을 내세워 서울가정법원에 “월남해 사망한 아버지의 친자식임을 인정해달라”는 소송을 낸 데 이어 “선친이 남한의 가족에게 남긴 100억 원대의 유산을 나눠달라”는 상속회복청구소송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이들은 2010년 친자확인소송에서 승소했고, 2011년 유산분할소송에서 재판부가 “부동산과 재산 일부를 북한 자녀에게 돌려주라”고 조정하며 마무리된 바 있다.

이후 2012년 시행된 특례법에선 북한 주민의 상속권을 인정하고 상속 지분도 남한 가족과 동일하게 인정한다. 대신 남한 자손이 피상속인(부모 등)을 모셨거나 재산의 유지 및 증가에 기여했을 때는 그 기여분을 감안한다. 또 북한 주민이 상속받은 재산을 북한으로 반출할 땐 재산이 상속자에게 온전히 돌아가지 않고 북한 당국이 가로챌 것을 우려해 법무부 장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법조계에선 이번 판결로 비슷한 소송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경현 에이원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앞으로 탈북한 이산가족 후손을 중심으로 유사 소송이 줄을 이을 것”이라며 “한국에 있던 다른 후손들은 이미 상속받은 재산을 생존 여부도 알지 못했던 다른 가족에게 내놓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상속 재산을 일찌감치 처분하는 식으로 대비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상철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위원장(62)은 “북한 주민도 6·25전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헤어진 한민족으로 보고 권리를 인정한 판결이다. 앞으로 유사 소송이 이어지면서 다소 혼란이 생길 수도 있지만 북한의 가족도 보호해야 한다는 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은지 kej09@donga.com·조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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