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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되자마자 재판 준비… 지역살림에 신경쓸 틈 없어

입력 | 2014-02-11 03:00:00

[지방자치 20년]<上>끊이지 않는 비리… 재보선의 악순환
[막오른 지방선거]




20년을 맞은 민선 지방자치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이었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주민이 직접 대표를 뽑는 선거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성년(成年)을 맞은 민선 지방자치의 주역인 기초단체장 후보들이 선거법을 위반했거나 지역 토착세력과 유착한 비리는 줄지 않고 있다. 6명 중 한 명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하차한 기형적인 구조다.

기초단체장들의 일탈 빈도는 국회의원보다도 높았다. 2003년 이후 기초단체장 재·보궐선거가 99회로 국회의원 재·보선(48건)보다 두 배 이상으로 많았다. 기초단체장 재·보선 횟수는 7대 광역시(42건·세종시 제외)보다 그 외 지역(90곳)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특징이었다.

재·보선을 자주 치르다 보니 국민의 혈세도 줄줄 새고 있었다. 2002년 이후 11년간 쓴 보궐선거 비용만 560억1743만 원이었다. 동아일보는 지방자치 20년을 맞아 인물-제도-운용의 측면에서 문제점과 대안을 살펴보는 3회 시리즈를 시작한다.

○ 지역사회를 분열시키는 분란의 장

경남 함양군은 2010년 6·2지방선거와 올해 6·4지방선거를 포함하면 4년 동안 군수 선거만 4번 치르게 됐다. 그 사이 현직 군수 두 명이 낙마했다. 그 이유가 모두 선거법 위반이어서 취임하자마자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다. 한 전직 기초단체장은 “송사에 걸리면 업무 1순위는 본인의 재판 준비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4년마다 선거가 치러지지만 지방선거 1년을 앞두고는 기초단체장이 낙마해도 재·보선을 치르지 않는다. 잦은 선거로 인한 행정력 낭비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20년 동안 단체장이 없어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된 경우도 61건이나 됐다.

선거 때만 되면 지역사회는 제각각 편을 갈라 다투는 분란의 장이 돼 버린다. 특히 유권자가 적어 한 표의 영향이 더 크고, 학연-지연 등 인맥이 복잡하게 얽힌 지역의 경우 그 폐해는 더 심했다.

경남지역의 한 공무원은 “공무원들도 현 군수뿐만 아니라 전직 군수, 부군수 등 잠재적인 차기 군수 후보자들과 출신 지역이나 학교와 연결돼 내내 분열돼 있고 반목도 심하다”고 말했다.

○ 지역 토착세력과의 부패 유착 여전

전북 임실군은 최근 명예감찰관을 읍면당 한 명씩 위촉했다. 민선 1∼5기 군수가 모두 중도 낙마한 불명예를 만회하기 위한 자구책이다.

이형로 전 군수는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2000년 11월 쓰레기매립장 조성 공사와 관련해 공사업체의 부탁을 받고 거짓으로 서류를 작성한 혐의로 구속돼 군수직을 내놓았다. 이철규 전 군수는 사무관 승진 후보자 3명에게서 승진 청탁과 함께 9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2003년 8월 구속돼 1년 2개월 만에 낙마했다.

김진억 전 군수는 오물하수처리장 공사를 발주해 주는 대가로 업자에게 2억 원 지급을 약속한 각서를 받은 혐의로 물러났고, 강완묵 전 군수는 선거를 앞두고 측근을 통해 건설업자에게서 돈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

지자체장 비리로 몸살을 앓는 동안 임실군 재정은 계속 악화됐다. 2012년 재정자립도는 12.6%로 전국 평균 17.3%보다 낮았다. 2009년(20.3%) 이후 계속 나빠지고 있다.

주민들이 직접 뽑는 기초단체장은 그 지역을 잘 아는 ‘토착민’이 될 가능성이 많다. 자기 마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관선 단체장보다 클 것이다. 그만큼 지역 토착세력과 유착될 가능성도 많다. 실제 20년 동안 아파트나 골재 채취, 골프장 등 건축 관련 인·허가를 해주는 대가로 기초단체장이 돈을 받아 낙마한 경우가 많았다. 과열선거로 늘어난 선거비용을 만회하기 위해 뇌물 유혹에 흔들리기도 쉽다.

○ 공천하는 정당, 책임 강화해야


국회에서는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제 유지냐 폐지냐를 두고 논란이 많다. 전문가들은 정당공천제가 유지된다면 정당들이 주민들에게 공천한 기초단체장들에 대한 ‘사후 보증(AS)’에 더 신경 써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당들이 선거 때만 되면 한 석이라도 더 얻기 위해 부정부패 전력자들을 거르지 않고 공천해 재·보선을 자초하는 경우도 꽤 있다. 철새 논란도 심하다.

김선기 경기 평택시장은 1995년부터 2002년까지 내리 3선에 성공한 뒤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했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4년 만인 2008년 특별 복권된 뒤 2010년 평택시장에 다시 당선됐다. 이 기간 김 시장의 소속 정당은 1995년 민주자유당→1998년 자유민주연합→2002년 한나라당→2010년 민주당으로 계속 바뀌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임기 도중 낙마한 기초단체장의 경우 다시 공천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당 공천을 받아 출마한 기초단체장이 부조리한 일로 낙마할 경우 정당의 국고보조금을 삭감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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