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달려간 모태범 어머니 정연화씨“4등 잘했어, 金은 4년전에 땄잖아… 그 좋아하던 고기도 입에 안대고체중조절 등 갖은 노력 다 했으니 오늘 1000m 좋은 결과 있을거야”
모태범의 어머니 정연화 씨가 10일 아들의 별명인 호랑이 모양의 ‘티거’ 털모자를 쓰고 레이스를 지켜보고 있다. 아래 사진은 아들의 금메달을 염원하며 금색 매니큐어로 칠한 정연화 씨의 손톱. 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10일(현지 시간) 소치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경기가 열린 아들레르아레나. 8000석을 갖춘 경기장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선수들이 레이스를 끝낼 때마다 만원 관중의 함성과 박수 소리가 경기장을 덮었다.
18조로 1차 레이스를 마친 모태범(25·대한항공)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빙판을 돌았다. 관중석 한쪽에서 아들을 응원하던 엄마 정연화 씨(53)가 “아들∼” 하고 모태범을 불렀다. 그 자그마한 소리가 들릴 리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태범은 한눈에 엄마를 알아봤다. 그러곤 엄마를 향해 오른손을 흔들었다.
먼저 아들의 금메달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손톱을 금빛 매니큐어로 칠했다. 또 하나는 만화 ‘내 친구 티거와 푸’의 호랑이 캐릭터인 티거 털모자를 준비했다. 정 씨는 모태범의 레이스가 시작되기 직전 손에 들고 있던 티거 털모자를 썼다. 그리고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채 기도를 했다.
정 씨는 “집에서 태범이 별명이 ‘티거’다. 티거랑 많이 닮았다. 이름에 호랑이를 뜻하는 순우리말 ‘범’자도 들어가 있기도 해서…”라고 했다.
모태범의 1차 레이스 결과는 34초84. 참가 선수 중 4위였다. 목표로 했던 금메달이 어려워졌다. 그래도 메달은 기대할 만했다.
2차 레이스 조 추첨이 발표됐다. 19조에서 모태범과 함께 레이스를 할 선수는 미헐 뮐더르(네덜란드)였다. 정 씨는 “잘됐다”라며 박수를 쳤다. 뮐더르가 워낙 잘 타는 선수이기 때문에 함께 타는 모태범도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렇지만 20조의 얀 스메이컨스(네덜란드)가 34초725로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1∼3위는 모두 네덜란드 선수의 차지가 됐다. 모태범은 아쉽게 4위에 머물렀다. 한국 선수단의 첫 메달도 미뤄졌다. 정 씨의 입에서는 “어휴∼” 하는 한숨이 터졌다.
모태범
정 씨가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전화벨이 울렸다. 모태범이었다. 정 씨의 첫마디는 “아들, 괜찮아?”였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던 모태범은 엄마에게는 “정말 많이 준비했는데 아쉽다”라고 심경을 털어놨다. 정 씨는 씩씩했다. 아니 씩씩한 척했다. “괜찮아, 아들. 정말 최선을 다했잖아. 그리고 메달은 4년 전에 이미 땄었잖아.”
그렇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모태범은 12일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남자 1000m에서 메달에 다시 도전한다. 모태범은 그동안 “500m보다는 1000m에 더 욕심이 난다”고 말해왔고, 올림픽 준비 역시 1000m에 맞춰서 해 왔다. 엄마 정 씨 역시 같은 자리에서 모태범을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티거 털모자를 쓰고, 금빛 손톱의 두 손을 꼭 모아 쥐고서.
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