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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12일 592번째 질주, 굿바이 이규혁

입력 | 2014-02-12 03:00:00

빙속 1000m 마지막 레이스… 세계新 3번에도 올림픽 노메달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24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한국 빙상을 이끈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의 맏형 이규혁이 12일 1000m 질주를 마친 뒤 스케이트화를 벗는다. 이규혁이 10일(현지시간) 열린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1차 레이스를 마친 뒤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손을 들어 답하고 있다. 소치=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겨울올림픽 6회 연속 출전에 각종 국내외 대회 레이스 완주만 총 591회. 숫자로만 봐도 ‘전설’을 느낄 수 있다. 한국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의 ‘맏형’이자 ‘대부’의 기록이다.

이규혁(36·서울시청)이 12일 열리는 2014 소치 겨울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에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 레이스를 벌인다. 13세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단 뒤 23년 만에 대표팀과 작별을 고한다.

1994년 릴레함메르 겨울올림픽 때 처음 올림픽과 연을 맺을 당시 그의 나이는 16세였다. 그때부터 20년간 올림픽에 출전하면서 매번 유력한 메달 후보로 꼽혔지만 단 하나의 메달도 따지 못했다. 1997년 11월 1000m에서 세계기록 2차례, 2001년 3월 1500m에서 세계기록을 한 차례 세우기도 했지만 올림픽 메달은 늘 그를 외면했다. 12일 1000m 레이스를 펼치고 평생 592회의 레이스를 마감하는 그로선 한이 남을 만하다. 하지만 이규혁은 “최선을 다했고 내 역할은 다했다”고 덤덤하게 마지막 올림픽을 준비했다.

그는 한국 빙상의 국제화를 이끈 선구자였다. 타고난 능력에 철저한 자기관리와 노력까지 더해 월드컵 등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그를 보고 후배들은 성장했다. 이규혁을 오랫동안 지켜본 송홍선 한국체육과학연구원 박사는 “한국 빙상이 밴쿠버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엔 ‘이규혁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국제 경쟁력을 갖춘 이규혁의 훈련 파트너로 모태범과 이강석 등이 함께하다 보니 자연히 대표팀 ‘내부 경쟁’부터 세계적인 수준이 됐고 자연스럽게 모태범 등이 떠오르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규혁이 밴쿠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의 조련사 역할을 한 셈이다.

사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이규혁에게 “지도자로 금메달 획득에 도움을 주는 게 더 좋지 않겠느냐”는 조언을 한 주변 인사들이 많았다. 지도자로서도 훌륭한 자질을 갖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규혁은 “아직 다른 선수들처럼 달릴 수 있는데 여기서 포기할 순 없다. 메달을 따지 못하더라도 내 꿈인 올림픽 무대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겠다”며 출전을 강행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이규혁은 대표팀 내에서 따로 훈련했다. 젊은 후배들에 비해 회복 능력이 떨어져 훈련 강도를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자신에게 맞는 훈련에 집중했다. 이규혁은 생애 마지막 레이스를 앞두고 트위터에 “지인들이 이번만큼은 즐기라고 하셔서 그렇게 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즐기면서 준비하면 혹 나에게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기대한다)”라며 “4년 전에도 그리고 20년 전에도 내 꿈은 올림픽 금메달”이라고 썼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