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혁은 1978년생이다.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 선수로는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다. 그러나 6번째 올림픽에 나선 그의 투혼에 전 세계가 박수를 쳤다.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500m 18위 그쳤지만 4년 전과 달리 웃음
메달 집착 버리니 더 소중한 것들이 보여
오늘 1000m 출전 ‘마지막 올림픽 레이스’
“국민의 많은 관심이 기록 0.1초씩 줄여”
이규혁(36·서울시청)은 10일(한국시간) 벌어진 2014소치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 출전하기 전 눈을 뜨고는 ‘오늘 1등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물론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중학교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단 뒤로 20년간 6번째 올림픽 무대였다. 세계적으로 뛰어난 선수가 많고, 한국대표팀 내에도 모태범(25·대한항공)이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1등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는 자체가 좋다”며 웃고는 “욕심을 부릴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고, 인정받고 싶다는 열망이 남아있다는 게 행복했다”고 털어놓았다.
이규혁은 남자 500m 1차 레이스에서 12위(35초16)를 했다. 깜짝 놀랄 만한 성적이었다. 최종 순위는 18위(2차 레이스 35초48·합계 70초65)에 그쳤지만,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었다”며 눈물을 흘렸던 2010밴쿠버동계올림픽과 달리 경기가 모두 끝난 뒤 활짝 웃었다. 이유가 있다. 그는 “마음을 비우고 올림픽에 와보니 내가 즐기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메달을 따지 못하면 죄인처럼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규혁은 12일 남자 1000m에서 마지막 레이스를 펼친다. 인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올림픽 최종 경기다. 그는 “1000m 테스트 기록은 메달권인데 스피드스케이팅은 기록경기라 어제, 오늘, 내일이 다르다”며 “마지막이니까 내가 하고 싶은 스타일로 경기를 치르려 한다.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1000m 경기가 끝나면 그의 도전은 막을 내린다. 사실상 그의 은퇴경기다. 그러나 한국스피드스케이팅의 도전은 계속된다.
이규혁은 “올림픽이 끝나도 우리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선수들은 계속 훈련을 하고, 또 구슬땀을 흘린다”며 “개개인에게 가져주는 관심 하나가 기록을 0.1초, 0.1초씩을 줄인다. 4년 전만 해도 네덜란드는 실력이 한국에 미치지 못했는데, 지금은 세계 정상이 됐다. 그 곳은 스케이트가 인기종목이기도 하고, 선수들에게 많은 관심이 쏟아진다. 우리도 주위에서 도움을 준다면 언젠가 올림픽에서 1, 2, 3등을 하는 날이 오지 않겠나. 나는 이 스포츠를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후배들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토해냈다.
소치|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트위터 @hong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