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민 국제부 기자
1950, 60년대만 해도 미 남부에서는 화장실, 상점 심지어 병원에서도 흑인과 백인의 출입구가 달랐다. 미 흑인 민권운동의 시초인 ‘로자 파크스’ 사건도 버스의 흑인과 백인 자리 구분 때문에 일어났다. 이런 시대였으니 ‘반란’을 일으킨 스미스와 칼로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두 사람이 일체의 정치 행위를 금지한 올림픽 헌장을 위반했다며 즉각 메달을 박탈했다. 호주로 돌아온 노먼도 백호주의(白濠主義)를 앞세운 여론의 비난에 시달렸고 1972년 뮌헨올림픽에는 아예 선수로 뽑히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세 선수의 행동은 전 세계의 지지와 각성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은 다르다. 성화 점화자인 러시아 피겨 여왕 이리나 로드니나(65)는 지난해 9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부부에게 바나나를 들이미는 합성사진을 리트윗해 파문을 일으켰다. 바나나는 겉이 노랗고 속은 희어 ‘백인을 따라하는 유색인’을 비하할 때 쓰인다. 피겨 페어스케이팅에서 금메달 3개를 딴 스포츠 영웅이라도 그를 성화 점화자로 낙점한 러시아 정부의 인식은 안이하다.
국내 스포츠계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몇몇 프로 야구단이 전지훈련을 했던 미 애리조나 주를 찾은 한 케이블방송의 여성 아나운서는 “(얼굴이 타) 깜둥이가 됐다”는 트윗을 올려 역풍을 맞았다. 지난해 한화이글스의 김태균은 롯데자이언츠의 흑인 투수 유먼을 두고 “까만 얼굴 탓에 그가 마운드에서 웃으면 흰 치아와 공이 겹친다. 그래서 공을 치기 힘들다”고 말해 국가인권위원회 경고까지 받았다.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판치는 세상에서 그나마 공정한 경쟁을 통해 승부를 가린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스포츠는 그 어떤 정치 행위보다 더 이상적이고 공정한 정치성을 요구받는다. 올림픽 3연패를 했건 국가대표 4번 타자이건 인종차별 논란을 낳은 선수가 비판을 받아야만 하는 이유다.
하정민 국제부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