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관련 충격적 사고에서 계속된 책임 회피 발언취임 때 ‘기본’과 ‘소박’ 강조하더니 선거 앞두고는 전시성 사업으로2대 치적도 과장과 근거 모호… 신뢰 하락 자초해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건국 50주년이었던 1998년 그는 한 기고문에서 ‘한국의 현대사는 그 자체가 통곡의 장이고 원한의 박물관’이라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는 그늘진 역사관과 일치한다. 그는 국가보안법에 대해 “폐지해야 한다”는 쪽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2004년에만 해도 “국가보안법은 민주주의에 반할 뿐 아니라 없어져도 국가 안보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생각은 자유일 터이지만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말이고, 너무 편향적이다. 국가보안법의 경우 북한의 끊임없는 위협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필요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져 있다. 박원순 개인이면 몰라도 서울시 행정에 이런 시각이 투영된다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시장이 되기 전인 2009년 지식인들이 뽑은 ‘소통을 가장 잘할 것 같은 인물’ 1위에 뽑혔다. 정반대에 있는 인물 1위로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선택됐다. 소통을 잘하느냐 못하느냐는 수치로는 환산되기 어려운 주관적 판단에 속하지만 박 시장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시민과 소통하려 하고, 현장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박원순 식의 소통이 미심쩍어진 것은 지난해 연이어 발생한 사고에서 비롯됐다. 2013년 7월 15일 노량진 배수지에서 상수도관 공사를 하던 인부 7명이 집중호우로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숨졌다. 희생자들은 중국동포를 포함해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이 공사는 서울시가 발주를 하고 시공사는 따로 있었으나 서울시 시설이니만큼 사실상 서울시 관할이었다. 사고 현장을 방문한 박 시장은 의외의 말을 했다. “보상 문제나 합의 문제는 시공사와 유족들 간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석해도 “서울시는 책임이 없다”는 뜻이었다.
곤혹스러운 상황에서 나온 실언(失言)일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보름 뒤인 7월 30일 방화대교 인근 고가도로 건설 현장에서 인부 2명이 사망한 사고에서도 서울시 입장은 되풀이됐다. ‘이 공사는 감리회사가 설계와 안전을 책임지는 체제’라는 것이었다. 박 시장은 11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일어난 민간 헬리콥터의 아파트 충돌 사고 때에도 현장에 나가 “사고 관할이 서울시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세계의 어느 대도시에서나 시장의 업무 가운데 높은 순위에 있는 위기관리에 대한 그의 발언은 귀를 의심할 정도로 놀라웠다.
얼마 전부터 박 시장이 올해 지방선거를 의식하고 쏟아내는 말들은 과거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2011년 10월 취임사에서 ‘화려하지 않아도 기본이 바로 서 있고, 소박하고 검소해도 안전한 서울을 그려 본다’고 밝힌 것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시의 부채를 줄이겠다고 하면서도 재원과 채산성 부족으로 오래전 보류됐던 8조5000억 원짜리 경전철 사업을 다시 들고 나오고, 박 시장 본인이 예산을 삭감했던 서울 동북 4구 개발 계획을 또 내놓은 것은 좀처럼 신뢰를 갖기 어려웠다. 박 시장이 요즘 각종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우는 ‘서울시 채무 3조 원 감축’이나 ‘임대주택 8만 호 공약 달성’도 근거가 모호하거나 실제보다 과장된 내용이 많다. 지난해 말 지하철 운영주체인 서울메트로의 노사협상 장소에 박 시장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뒤 바로 타결이 이뤄진 것도 ‘퍼포먼스’로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