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은 어쩌다 ‘염전 노예’가 되나
본보 취재 결과 브로커들은 노숙인이 많은 서울역에서 경찰의 감시를 피해 노숙인들에게 은밀히 접근하고 있었다. 서울역에서 노숙을 시작 한 지 1년이 된 홍모 씨(47)는 12일 “최근까지도 자신을 인력소개소 직원이라 밝힌 사람들이 노숙인들을 찾아와 ‘염전 등지에서 일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홍 씨는 “노숙인들도 이미 신안 염전에 대한 악명은 익히 알고 있어 꺼렸지만 이들은 ‘일이 그다지 힘들지 않고 조건도 좋다’고 꼬드겼다”고 밝혔다.
브로커들은 노숙인들에게 의식주 제공에 용돈, 담배까지 준다고 설명하며 유인했다. 박모 씨(48)는 “2년 전 밥도 주고 재워주며 담배까지 준다는 말에 속아 서울역 앞에서 승합차를 타고 신안에 있는 염전에 도착했다”며 “처음 출발할 때는 그리 힘든 일이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막상 가보니 사람으로서 견디기 힘든 중노동에 밥도 제대로 주지 않고 게으름을 피운다고 몽둥이로 때리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밝혔다. 박 씨는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저는 바람에 염전에서 쫓겨나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황모 씨(60)는 “브로커들은 우리에게 담배와 커피를 사주며 ‘쉼터가 있는데 한 달에 10만 원가량의 용돈과 담뱃값 4만 원, 그리고 의식주도 제공한다’고 속여 염전 등으로 데려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신안군 지도읍 참도의 염전과 김양식장에서 10년간 일했다는 박모 씨(55)는 “그곳에서 일할 때 서울역 목포역 등지에서 술에 취한 노숙인들을 승합차에 태워 염전으로 데려가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
브로커를 따라 섬에 도착한 노숙인들은 월급도 받지 못하고 툭하면 폭행을 당하며 일해야 했다. 장모 씨(45)는 “같이 노숙을 했던 동료는 ‘서울 근처 가방공장에서 일하면 200만 원을 준다’는 말에 속아 섬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개사료를 끓여 밥으로 줬으며 배가 고파 집에 보내달라고 하자 3일 정도 굵은 몽둥이로 온몸을 두들겨 팼다”고 말했다. 3년 전 신안군 지도읍의 한 김양식장에서 탈출했다는 이모 씨(45)도 “그곳에서 하루 종일 감시를 받으며 일하다가 겨우 빠져나왔는데 이웃 김양식장에서 60대 장애인이 3년간 폭행을 당하며 돈 한 푼 받지 못한 채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 씨는 “당시 해경에 신고했지만 오히려 해경 측에서 양식장 사장을 부른 뒤 ‘좀 데려가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현대판 노예 거래’가 횡행하자 경찰청은 23일까지 전국 염전 등에 대해 집중 단속을 벌이고 노동력 착취행위 및 노숙인 등을 대상으로 한 불법 유인행위를 단속하겠다고 12일 밝혔다.
백연상 baek@donga.com·강병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