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73cm 롱다리에 순발력-지구력 갖춰전이경, 진선유 이어 쇼트트랙 다관왕 도전
한국이 종합순위 톱10의 성과를 거뒀을 때는 예외 없이 다관왕이 존재했다. 1992년 알베르빌 대회 김기훈(2관왕),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 전이경(2관왕), 1998년 나가노 대회 전이경(2관왕), 2006년 토리노 대회 안현수·진선유(이상 3관왕), 2010년 밴쿠버 대회 이정수(2관왕)가 그들이다. 모두 쇼트트랙 선수다. 한국은 소치에서도 다관왕을 기대하고 있다. 바로 17세 여고생 심석희(세화여고)가 주인공이다. 한국 여자 쇼트트랙은 4년 전 ‘노골드’의 수모를 겪었다. 심석희의 어깨가 더 무거운 이유다. 심석희는 이번 대회에서 4종목(500m·1000m·1500m·3000m 계주)에 출전한다.
심석희는 키(173cm)가 크다. 흔히 쇼트트랙 선수는 체구가 작아야 유리하다고 생각하지만 심석희처럼 순발력과 지구력까지 갖춘 경우라면 클수록 유리하다. 안상미 SBS 해설위원은 “큰 키를 본인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거기서 나오는 힘과 속도는 엄청나다”라고 말했다. 심석희는 지독한 연습 벌레이기도 하다. 타고난 재능과 노력을 겸비했기에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 최광복 쇼트트랙 여자대표팀 코치는 “쇼트트랙은 태릉선수촌에서도 훈련을 많이 하기로 손꼽히는 종목이다. 하지만 심석희는 훈련을 다 소화하고도 혼자 남아 다시 연습을 한다.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성실함이 있었기에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심석희는 언론과 인터뷰를 할 때는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수줍음 많은 여학생이지만 빙판 위에서는 대범한 승부사로 변신하는 ‘두 얼굴’을 가졌다.
심석희는 “1500m와 계주를 주 종목으로 생각하고 있다. 금메달을 몇 개 따겠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은 모두 경험이 많다. 배운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전이경과 진선유는 각각 배화여고와 광문고에 재학 중인 여고생으로 올림픽 다관왕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에서 2관왕에 올랐던 전이경은 4년 뒤 나가노 대회에서 다시 2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며 역대 겨울올림픽 한국 선수 최다 금메달(4개) 및 최다 메달(5개)의 주인공이 됐다. 진선유는 토리노 대회 1000m·1500m·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 3관왕을 차지했다. ‘짧고 굵은’ 활약이었다. 2014년 ‘무서운 여고생’ 심석희는 자신이 ‘롤 모델’로 꼽는 전이경과 진선유를 뛰어넘어 한국 쇼트트랙의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