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 스케이팅 대표 시절 태극마크를 달고 빙판을 질주하고 있는 최재봉(위쪽 사진). 지금은 특선급 경륜 선수로 벨로드롬 트랙을 누비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바쁜 시간을 통해 후배 빙상 선수를 지도하고 있는 등 그의 마음 속 스케이팅은 아직 진행형이다.
■ 빙속선수 출신 최재봉의 제2 인생
박석기선수 권유로 스피드스케이팅서 경륜선수로
쓰는 근육 유사…사블리코바 등 성공사례도 많아
“특선급 롱런 후 스피드스케이팅 지도자 꿈 꾼다”
그는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을 대표하던 스타였다. 1995년 수원 수성중 3학년 때 태극마크를 처음 단 이후 14년간 국가대표로 빙판을 질주했다. 1999년 아시안게임에서 2관왕(1000·1500m), 2000년에는 세계선수권 500m에서 우승했다. 올림픽도 3회나 출전했다. 그러나 지금 그가 달리는 곳은 빙판 위가 아닌 트랙이다. 2008년 20년간 신었던 스케이트화를 벗고 은퇴한 뒤 경륜 선수로 변신한 최재봉(34·17기·특선급)의 이야기다.
함께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이규혁이 소치에서 마지막 레이스에 나서던 12일 훈련으로 땀을 쏟고 있던 최재봉을 만났다.
- 지금 소치올림픽이 한창이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만감이 교차한다. 내가 마지막으로 참가했던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때 이상화와 모태범은 대표 막내들이었다. 후배들 덕분에 빙상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져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다.
- 어떤 점이 부럽나.
- 2년 선배인 이규혁 선수는 6번째 올림픽에 출전중이다.
“정말 대단한 선수다. 성적에 상관없이 아름다운 도전만으로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
- 스피드 스케이팅 간판 스타였는데 경륜으로 전향한 이유는.
“은퇴 후 진로를 고민했다. 운동은 계속하고 싶었다. 친분이 있던 박석기(39·8기·선발급) 선수의 권유로 경륜 후보생에 지원했다. 허리를 구부려서 타는 폼이 비슷하고 쓰는 근육도 유사해 적응이 쉬울 것 같았다. 일본에서 스피드 스케이팅 출신 선수들의 성공사례도 자신감을 주었다.”
다시 빙상에 복귀한 사블리코바는 이번 소치 올림픽 3000m에서 은메달을 땄다.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올림픽에서 사상 초유의 전 종목(500·1000·1500·5000·1만m) 우승이란 대기록을 세운 에릭 하이든(56·미국)도 올림픽 이후 사이클 선수로 변신, 프로대회에서 우승했다.
- 경륜선수가 된다고 했을 때 반대는 없었나.
“오랫동안 뒷바라지 해준 어머니는 빙상 지도자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아직 시기가 이르다고 생각했다. 스케이팅 지도자는 나중에 할 수 있다고 어머니를 설득했다.”
- 적응에 어려움이 없었나.
“스케이팅 선수 시절 했던 사이클 훈련이 큰 도움이 됐다. 스케이팅 선수들은 하체 근육을 키우기 위해 타이어를 자전거에 매달고 산악이나 평지를 달리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한다.”
- 2013년 하반기 등급조정으로 특선급으로 승급했다.
“지구력은 다른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비선수 출신의 단점인 경주운영 능력도 경험이 쌓이며 많이 늘었다. 지난해 두 번의 대상경주 우수급 우승으로 자신감도 생겼다.”
- 꿈을 알려 달라.
“우선 부상 없이 특선급에서 롱런하고 싶다. 스케이팅 출신 경륜선수 1호인만큼 꼭 성공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경륜선수로 성공한 후 다시 빙판으로 돌아갈 것이다. 스피드스케이팅 지도자는 가장 중요한 꿈이다.”
인터뷰를 마친 최재봉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주일에 두 번 태릉으로 스피드스케이팅 후배들을 지도하러 가야 한다고 했다. 오전에는 벨로드롬, 오후에는 얼음판. 그는 여전히 ‘스피드 인생’을 살고 있었다.
김재학 기자 ajapto@donga.com 트위터@ajap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