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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바퀴로 쓰는 HE-스토리] 최재봉 “사이클 만난 건 대퇴부 근력 덕분”

입력 | 2014-02-14 07:00:00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 시절 태극마크를 달고 빙판을 질주하고 있는 최재봉(위쪽 사진). 지금은 특선급 경륜 선수로 벨로드롬 트랙을 누비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바쁜 시간을 통해 후배 빙상 선수를 지도하고 있는 등 그의 마음 속 스케이팅은 아직 진행형이다.


■ 빙속선수 출신 최재봉의 제2 인생

박석기선수 권유로 스피드스케이팅서 경륜선수로
쓰는 근육 유사…사블리코바 등 성공사례도 많아
“특선급 롱런 후 스피드스케이팅 지도자 꿈 꾼다”


그는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을 대표하던 스타였다. 1995년 수원 수성중 3학년 때 태극마크를 처음 단 이후 14년간 국가대표로 빙판을 질주했다. 1999년 아시안게임에서 2관왕(1000·1500m), 2000년에는 세계선수권 500m에서 우승했다. 올림픽도 3회나 출전했다. 그러나 지금 그가 달리는 곳은 빙판 위가 아닌 트랙이다. 2008년 20년간 신었던 스케이트화를 벗고 은퇴한 뒤 경륜 선수로 변신한 최재봉(34·17기·특선급)의 이야기다.

8일(한국시간) 개막한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국민들은 서른여섯 살의 노장 이규혁의 마지막 도전에 감동했다. 최재봉은 이규혁보다 두 살 어린 후배다. 과거 거친 숨소리와 함께 얼음판을 밀어내던 그의 굵은 허벅지는 지금 페달로 바퀴를 굴리는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함께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이규혁이 소치에서 마지막 레이스에 나서던 12일 훈련으로 땀을 쏟고 있던 최재봉을 만났다.

- 지금 소치올림픽이 한창이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만감이 교차한다. 내가 마지막으로 참가했던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때 이상화와 모태범은 대표 막내들이었다. 후배들 덕분에 빙상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져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다.

- 어떤 점이 부럽나.

“내가 선수생활을 할 때는 빙상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지금 같지 않았다. 스폰서 등에서 이 정도의 지원만 있었다면 나도 올림픽 메달을 딸 수 있었을 것 같다.”

- 2년 선배인 이규혁 선수는 6번째 올림픽에 출전중이다.

“정말 대단한 선수다. 성적에 상관없이 아름다운 도전만으로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

- 스피드 스케이팅 간판 스타였는데 경륜으로 전향한 이유는.

“은퇴 후 진로를 고민했다. 운동은 계속하고 싶었다. 친분이 있던 박석기(39·8기·선발급) 선수의 권유로 경륜 후보생에 지원했다. 허리를 구부려서 타는 폼이 비슷하고 쓰는 근육도 유사해 적응이 쉬울 것 같았다. 일본에서 스피드 스케이팅 출신 선수들의 성공사례도 자신감을 주었다.”

최재봉의 말대로 사이클과 스피드 스케이팅은 모두 대퇴부의 강력한 근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두 종목에서 뛰어난 성적을 내는 선수들이 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2관왕(3000·5000m)에 올랐던 마르티나 사블리코바(26·체코)는 2011년 여름 자국의 사이클 선수권에서 우승했다.

다시 빙상에 복귀한 사블리코바는 이번 소치 올림픽 3000m에서 은메달을 땄다.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올림픽에서 사상 초유의 전 종목(500·1000·1500·5000·1만m) 우승이란 대기록을 세운 에릭 하이든(56·미국)도 올림픽 이후 사이클 선수로 변신, 프로대회에서 우승했다.

- 경륜선수가 된다고 했을 때 반대는 없었나.

“오랫동안 뒷바라지 해준 어머니는 빙상 지도자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아직 시기가 이르다고 생각했다. 스케이팅 지도자는 나중에 할 수 있다고 어머니를 설득했다.”

- 적응에 어려움이 없었나.

“스케이팅 선수 시절 했던 사이클 훈련이 큰 도움이 됐다. 스케이팅 선수들은 하체 근육을 키우기 위해 타이어를 자전거에 매달고 산악이나 평지를 달리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한다.”

- 2013년 하반기 등급조정으로 특선급으로 승급했다.

“지구력은 다른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비선수 출신의 단점인 경주운영 능력도 경험이 쌓이며 많이 늘었다. 지난해 두 번의 대상경주 우수급 우승으로 자신감도 생겼다.”

- 꿈을 알려 달라.

“우선 부상 없이 특선급에서 롱런하고 싶다. 스케이팅 출신 경륜선수 1호인만큼 꼭 성공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경륜선수로 성공한 후 다시 빙판으로 돌아갈 것이다. 스피드스케이팅 지도자는 가장 중요한 꿈이다.”

인터뷰를 마친 최재봉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주일에 두 번 태릉으로 스피드스케이팅 후배들을 지도하러 가야 한다고 했다. 오전에는 벨로드롬, 오후에는 얼음판. 그는 여전히 ‘스피드 인생’을 살고 있었다.

김재학 기자 ajapto@donga.com 트위터@ajap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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