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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 없는 작업장 ‘풍강정밀’

입력 | 2014-02-14 03:00:00

[말이 세상을 바꿉니다]<1부>나는 동네북이 아닙니다
이름 부르고 “고맙다” “잘했어”… 고국 갔다가도 되돌아와




10일 오전 경기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 풍강정밀에서 한국인 직원과 외국인 직원이 다 같이 손을 모으고 있다. 왼쪽부터 부트 찬라트나, 쿤 소칸 씨, 홍기본 사장, 카이 소팔 씨, 한국인 직원 김탁현, 홍석민 씨.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경기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 풍강정밀은 ‘욕설 없는 작업장’으로 유명하다. 10일 오전 이 공장에서 만난 캄보디아 출신 카이 소팔 씨(31)는 자신의 이름 외에 평소 가장 자주 듣는 말이 “고맙다”와 “잘했어”라고 했다. 그가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형”이다.

이 회사 직원 39명 가운데 31%인 12명은 캄보디아 출신 남자 직원들. 1973년 설립된 금형부품 전문기업인 풍강정밀은 지난해 68억 원의 매출액을 올린 중소기업이다.

“모범 외국인 근로자 사업장을 추천해 달라”는 동아일보 취재팀의 요청에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가 자신 있게 추천한 곳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풍강정밀을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중소기업에서 난무하는 언어폭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며 “발음하기 쉽지 않은 이름인데도 한국인 직원들이 일일이 외국인 직원들의 이름을 기억해 부르고 외국인들은 연장자인 한국인 직원들을 ‘형’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 장기 근속자 늘면서 생산성 쑥쑥

이 공장에서 일하는 캄보디아인 중 5명은 한국에 재입국한 이들이다. 처음에 비전문취업비자(E-9)를 받고 최대 체류기간(4년 10개월) 동안 머무르다 귀국한 뒤 다시 한국으로 일하러 온 것이다. 보수만 따진다면 더 나은 조건의 회사로 갈 수 있었을 텐데 이들이 풍강정밀을 다시 찾은 이유는 뭘까.

부트 찬라트나 씨(27)는 가장 큰 이유로 ‘구내식당 아주머니’를 꼽았다. “어머니처럼 잘 대해 주셨어요. 한국인 동료들도 형, 동생 관계로 지낼 수 있어서 편안했어요.”

지난해 8월 재입국한 소팔 씨도 이 회사로 돌아온 근로자다. 그는 “동료들의 따뜻한 말과 가족적인 회사 분위기가 그리웠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회사에서는 폭언에, 심지어 구타까지 벌어진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여기서는 그런 일은 상상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른 회사에서는 한두 달 만에 회사를 바꾸는 외국인 근로자가 흔하지만 이런 분위기 덕분에 풍강정밀에는 단기 근무자가 거의 없다. 풍강정밀에서 가장 짧게 근무한 외국인 근로자인 노우 찬덴 씨(22)는 지난해 6월 입국한 후 계속 근무 중이다.

한 번 발을 들이면 오래 근무하고, 5년 가까이 일한 ‘베테랑’ 근로자가 다시 돌아오는 분위기다 보니 풍강정밀은 다른 중소기업이 고질적으로 겪는 ‘생산성 손실’도 대단히 적다.

숙련된 노동자를 별도의 교육기간 없이 곧바로 업무에 투입할 수 있기 때문에 매출액은 최근 10년간 매년 5∼10%씩 성장하고 있다. 이 회사의 홍기본 사장(76)은 “외국인 직원들이 없었다면 구인난 때문에 공장이 멈췄을 수도 있다”며 “이들의 숙련된 일솜씨와 성실한 태도 덕분에 회사가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 말 한마디의 중요성

‘품질주의, 납기 준수주의, 가격 합리주의’ 등이 홍 사장의 경영철학이지만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철학이 있다. 바로 ‘고운 말 쓰기’다. 홍 사장은 “한국인 직원을 채용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인성(人性)이고, 말하는 습관을 주로 본다”며 “회사에서 폭언이나 욕설이 오가는 것은 절대 용인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처음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했던 20년 전만 해도 이 회사의 분위기는 많이 달랐다. 아시아 계통 외국인을 얕잡아 보는 분위기가 있었고, 외국인 직원에 대한 한국인 직원의 폭언 등으로 갈등도 적지 않았다.

홍 사장은 ‘함께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몸소 나섰다. 수시로 공장을 찾아 외국인 근로자들을 격려했다. “힘든 일은 없었니?” 하고 묻거나 “솜씨가 대단하다” 같은 칭찬을 해주자 공장 분위기는 서서히 바뀌어 갔다.

김탁현 생산부 대리는 “최고경영자가 평소에 험한 말을 싫어한다는 것을 아니까 더 말을 조심하게 된다”면서 “이게 습관이 돼서 직장 밖에서도 욕을 쓰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이름 불러주고, 말 예쁘게 하는 데는 돈이 안 들고, 기업에도 도움이 됩니다.” 외국인 근로자들과 현장에서 살을 맞대며 상생의 길을 찾아낸 홍 사장의 설명이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이원진 인턴기자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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