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에게 소치올림픽은 ‘고난의 시간’이 되고 있다. 사진제공=Gettyimages/멀티비츠
사상 최악의 올림픽 메달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남자 쇼트트랙 국가대표팀을 향해 쏟아지는 질타에 선수들도 평정심을 잃고 있다.
14일(이하 한국시간) 신다운이 자신의 SNS를 통해 이호석을 비난하는 누리꾼들에게 "그만해달라"라고 절규한 것은 이들이 얼마나 절망적인 심경에서 올림픽을 치르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초반 이후 무난하게 1위를 달리던 한국은 경기 막판 이호석이 넘어지면서 아쉽게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많은 누리꾼들은 이호석을 향해 날선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이에 신다운은 이호석을 두둔하는 글을 자신의 SNS에 올려 비난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두서없는 신다운의 호소문은 그가 얼마나 '무너진 멘탈'로 이번 올림픽에 임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는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이른바 '안현수 효과'로 인해 사상 최악의 무관심과 백안시를 당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쇼트트랙 2차 월드컵은 이 같은 분위기를 명백하게 드러낸 현장이었다. '빅토르 안' 안현수(29·러시아)가 등장할 때면 불꽃 같은 환호가 쏟아진 반면, 한국 선수들을 응원하는 목소리는 이에 묻히기 일쑤였다.
안현수 이후 한국 쇼트트랙의 에이스로 군림해온 노진규와 곽윤기가 모두 부상 후유증으로 빠진 올림픽 대표팀의 전력은 역대 최약으로 평가되어왔다. 올림픽 전 지상파 방송 3사 쇼트트랙 해설위원들을 비롯한 빙상계 관계자들은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에게는 힘든 올림픽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는 어찌 됐든 세계에서 가장 치열하다는 한국의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을 실력으로 뚫어낸 선수들의 책임은 아니다.
하지만 안현수를 응원하는 마음은 안현수 관련 문제에서 끝나야한다. 이 같은 반감이 죄 없는 국가대표 선수들에게까지 쏠리는 것은 다른 문제다. 올림픽 전부터 SNS와 온라인 상에는 "한국 선수들은 다 실격했으면 좋겠다", "안현수가 한국 선수들 앞에서 금메달 세리머니를 펼쳤으면 좋겠다"라는 등의 지나친 비난들이 범람했다. 안현수가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한국 선수들이 못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변질된 것이다. 심지어 신다운과 이호석이 경기 중에 넘어진 것에 대해 "꼴좋다", "쌤통이다" 등의 반응을 보이는 것은 명백하게 비뚤어진 팬심의 발로다.
신다운의 SNS 글은 그가, 또는 대표팀 선수들이 이 같은 분위기를 꾸준히 모니터링 해왔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 설령 본인이 신경쓰지 않는다고 해도,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깊은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한 나라를 대표해 나선 선수들의 등에 자국민들이 응원과 환호, 위로와 격려는커녕 칼을 꽂는 현실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부진한 성적과 계속되는 실수에 가장 속상해하고 있을 사람은 다름 아닌 국가대표 선수들 자신이다. 지금은 올림픽을 치르고 있는 그들을 격려하고 힘을 북돋아 줘야할 때다.
여러 가지로 한국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에게 있어 2014 소치 겨울올림픽은 악몽으로 남게 될 우려가 커졌다. 그나마 금메달을 노려볼 종목으로 평가됐던 남자 1500m와 5000m 계주에서 각각 메달 획득에 실패하면서, 노 골드는 물론 '노 메달'의 압박감마저 선수들을 덮치고 있다.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이 남은 1000m와 500m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뒤, 국민에게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소감을 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영록 동아닷컴 기자 bread425@donga.com
한국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에게 소치올림픽은 ‘고난의 시간’이 되고 있다. 사진제공=Gettyimages/멀티비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