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이상화(25·서울시청)는 “이제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고 했다. 그녀는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역대 3번째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뒤 14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코리아하우스 메달리스트 인터뷰에 참석해 우승의 기쁨, 금메달을 따기까지 준비과정, 한국스피드스케이터로서의 자부심 등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이상화는 “앞으로 계획은 하나도 없다”며 “이제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상태다. 이 기쁨을 누리고 싶은 마음뿐”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다음은 이상화와의 일문일답.
-우승한 소감은?
“4년간 노력에 결실이 맺어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500m 금메달을 땄는데 1000m를 준비해야 해서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지금은 일단 끝났으니까 이 기쁨을 누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올림픽 신기록이었다.
“1차 레이스에서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2차 레이스 때 만회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 것보다 엄청난 부담감을 이겨낸 것에 대해 내 자신에게 뿌듯해 하고 있다.(웃음)”
-올림픽 2연패, 세계신기록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체중감량의 비결은?
“작심삼일보다 꾸준히. 난 먹으면서 뺀다. 유산소 운동을 많이 했다.”
-허벅지의 보험을 들 생각은 없나.
“아직까지 콤플렉스가 허벅지다. 밴쿠버 때는 꿀벅지, 금벅지, 철벅지까지 나오더라. 너무 허벅지에 초점이 맞춰지니까 좀 그렇다.”
“시즌 초반부터 세계신기록을 세웠기 때문에 올림픽에 가까워지면서 ‘올림픽에서 못 하면 어쩌라’라는 걱정을 많이 했다. 부담감이 많아서 힘들었는데 이겨내려고 노력했고, 경기 당일에도 올림픽이 아닌 월드컵으로 생각하고 임해서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긍정적 성격이 돋보이는데 메달을 딸 거라고 예상했나.
“메달을 따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저 ‘이미 금메달을 땄기 때문에 못 따도 상관없어’라는 마음으로 임했다. 올림픽 메달을 따는 것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하나 있다’는 생각만으로 편하게 임했다.”
-몸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미국(솔트레이크시티)에서 감기가 정말 심하게 걸렸다. 체력과 면역력이 떨어지다 보니 감기가 걸린 것 같다. 그래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원기회복해서 운동하면 되니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승선 통과할 때 느낌은?
“결승라인을 통과하고 기록을 봤을 때 굉장히 놀랐다. 앞에 있는 선수들이 잘 탔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는데 2차 레이스 끝나고 전광판에 내 이름이 맨 앞에 있는 것을 보고 ‘다시 해냈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감동이 밀려왔다.”
-러시아의 열성적 응원에 긴장은 하지 않았나.
“내 앞의 조가 러시아 선수였다. 함성 소리가 너무 커서 내 소개가 안 들리더라.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4년 뒤에는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니까 본때를 보여주면 된다.”
-체중 감량은 스피드스케이팅을 위한 전략이었나.
“예전 스피드스케이팅은 몸집도 크고 다리도 두꺼워야하는 추세였는데 지금은 모든 선수들이 슬림해졌다. 몸 자체가 가벼워서 경기를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무릎부상도 있었고 많이 아팠는데 어떻게 극복했는지.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고질병을 가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하지정맥류는 아팠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사실 무릎이 걱정이었다. 심하게 운동한 날에는 무릎에 물이 차서 구부러지지 않을 정도였다. 작년 세계선수권 때도 부은 상태로 경기를 하느라 스타트할 때 힘들었다. 올림픽 시즌에는 필요한 운동만 딱딱 정해서 하고 무리하지 않았다. 그래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무릎이.”
-코칭스태프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운동량이 변한 건 없다. 일단 코칭스태프들이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게 컸다. 시키는 대로 하면 하니까(웃음). 그런 부분이 나에게 도움이 된 것 같다. 열심히 한 것밖에 없다.”
-메달 세리머니에서 너무 많이 울었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그 자리에서 애국가를 듣게 되면 누구나 울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주체할 수 없이 많이 쏟아졌다. 그동안의 노력, 올림픽 무대에서 부담감을 이겨내고 2연패를 해냈다는 사실, 힘들었던 기억이 종합되면서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쇼트트랙 강국에서 스피드스케이팅을 결정한 이유는.
“나도 처음에는 쇼트트랙으로 스케이트를 시작했는데 어렸을 때 얼굴을 다쳤다. 그 후로는 트라우마가 걸려 못 타겠더라. 스피드스케이팅을 넘어갔는데 상대선수와 부딪힐 일도 없이 자기 갈 길만 가면 된다. 혼자 하는 레이스가 나에게 잘 맞았다. 또 내가 얼마나 노력했느냐에 따라 기록이 나오기 때문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달려왔던 것 같다.”
-타고난 재능과 후천적 노력, 몇 대 몇으로 만들어진 선수인가?
“50대50라고 생각한다. 타고난 부분에 다른 재능을 더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타고난 것은 순발력이다. 여기에 기술이 겸비돼 기록이 좋아졌다.”
-메달 획득에 실패한 모태범에게 어떤 얘기를 해줬는가.
“밴쿠버 때는 인터뷰에도 친구들이 함께 앉아 있었는데 아쉽고 속상하다. 경기를 보면서 나도 눈물이 났다. 아쉽게 메달 획득에 실패했지만 그들은 이미 올림픽 메달리스트다. 또 2018년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이 있기 때문에 거기서 메달을 딴다면 더 큰 환영을 받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태범이 네덜란드가 부럽다고 말했는데….
“500m, 1000m를 네덜란드 선수들이 석권을 했으니까 (모)태범이는 부럽다고 한 게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모)태범이를 대신해서 금메달을 땄고, 우리나라에 금메달이 생겼으니 부럽진 않다.”
-한국이 외국에 비해 훈련 시스템이나 여건이 좋지 않다.
“우리나라 시스템이 굉장히 열악한 게 사실이다. 링크장 환경도 그렇고, 시스템이 잘 구성된 나라가 부럽다. 그래도 어쩌겠나. 거기에 맞게 운동해야 한다.”
-가족의 헌신이 금메달을 따는 데 동기부여가 됐는지.
“오빠와 스케이트를 함께 시작했는데 오빠보단 내가 더 잘 탔다(웃음). 당시에는 몰랐는데 국가대표가 된 후에 오빠가 스케이트를 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걸 생각하면 미안하다. 그래도 내가 올림픽 메달을 땄기 때문에 행복해 할 거라고 생각한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는데 부모님을 떠올리면 그 생각이 사라졌다. 내 뒷바라지 하시느라 고생하셨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죄송했다.”
-운동 시작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밴쿠버올림픽이 끝나고 2010~2011년이 가장 힘들었다.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면서 정상에 있었기 때문에 어떤 경기든 2등, 3등 용납이 되지 않았다. 특히 2011년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때 부담을 이겨내지 못했다. 당시 올림픽에 나왔던 선수들이 많아 쉽지 않은 경기였다. 그걸 이겨내지 못했던 게 아쉽다.”
-올림픽 2연패 이후 치르는 경기는 어떨 것 같나.
“이제는 안 힘들 것 같다. 경험도 있고 모든 걸 이겨냈다. 올림픽 2연패에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 ‘2연패도 했는데 뭘 못 하랴’라는 생각이 든다.”
-여제라는 별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스피드스케이팅은 기록으로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여왕’보다는 ‘여제’라는 느낌이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경기를 앞둔 김연아를 향한 응원메시지가 있나.
“하던 대로 하면 연아도 좋은 결과 나올 것 같다. 난 잘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김연아와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하는 것이 닮아있는데….
“사실 아까도 (김)연아와 문자메시지 주고받았는데 경기를 할 때까지 과정을 즐기라고 했다. 그런데 나보다 나은 것 같다. 걱정도 없고 긴장을 전혀 안 하더라(웃음).”
-결혼기사가 나왔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 1000m 타기 전에 그런 기사를 접했다. 내겐 1000m도 중요한 경기인데 그런 추측성 기사가 나와서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향후 결혼 계획에 대해서는.
“생각한 적이 없다. 올림픽에만 집중했고 그런 생각 한 적도 없어 당황스럽다.”
-2018평창동계올림픽에 도전할 생각은 있나.
“아직 없다. 아직 잘 모르겠다. (모)태범이나 (이)승훈이 같은 친구들은 할 것 같다.”
-남은 올림픽 기간은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계속 놀고 그럴 순 없으니까 운동을 할 것 같다. 또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관람하면서 응원하고 싶다. 그런데 나만 경기가 끝나서 함께 놀 친구가 없다. 나 혼자 즐겨야겠다.”
-한국에 돌아가면 하고 싶은 것은 뭔가.
“쉬고 싶다. 바빠질 것 같기도 하지만 몸 상태가 안 좋기 때문에 쉬어야할 것 같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 얼굴을 보면서 TV 보고 싶다.”
소치|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트위터 @hong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