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기자
며칠 전 서울 서초동 삼성그룹 본사의 엘리베이터를 탔더니 모니터 한가운데에 ‘주의맹 현상’(사진)이라는 큰 글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의맹 현상(change blindness)이란 제대로 주의하지 않으면 주변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게 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모니터 속 화면은 주의맹 현상의 뜻을 설명한 뒤, 최근 삼성전자의 실적 위기를 우려하는 국내외 언론의 헤드라인들을 잇달아 보여줬습니다. 이어 “2013년 우리는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도 견조한 실적을 유지했습니다”라는 문장 뒤로 빨간색 큰 글씨로 ‘그러나’라고 적었습니다. 언제든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출입기자로서 옆에서 바라본 삼성그룹은 최근 정말 심각하게 위기를 느끼는 모습입니다. 지난달 약 5년 만에 열린 삼성전자 사업부별 결의대회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답니다. “우리 다시 잘해보자”는 ‘으쌰으쌰’ 식의 분위기가 아니라 “이러다 정말 다 같이 죽는다”는 생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일각에선 분기 영업이익이 10조 원에서 8조 원대로 떨어진 게 위기면 다른 회사들은 어쩌란 말이냐는 푸념도 나옵니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긴장하자는 삼성의 위기의식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주변을 의식할 때 지금 삼성이 손에 든 ‘1등 성적표’를 뛰어넘을 새로운 기회도 보일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한계 돌파’가 아닐까요.
김지현·산업부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