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내 친구]
2008년 이후 쭉 ‘임금 없는 성장’ (동아일보 1월 13일자 B8면)
경제가 성장해도 가계의 실질임금 증가율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반면 기업들은 저축을 크게 늘리고 있습니다. ‘임금 없는 성장’ 속에 기업들은 내부자금을 크게 축적하고 있는 것이죠. 임금 없는 성장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기업은 왜 저축을 늘리려는 걸까요? 임금 없는 성장과 기업저축의 부작용을 극복하는 방법이 없는지 살펴봅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전체 저축에서 기업저축이 차지하는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 반면 가계저축의 비중은 감소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점에서 시중에 공급할 설 자금을 직원들이 옮기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DB
정부는 ‘고용 없는 성장’을 피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현 정부도 고용률을 높이는 것을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그 결과 고용의 양적 측면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얻었습니다. 노인, 여성, 저학력자, 저숙련자, 비정규직 등의 일자리가 2008년 이후 크게 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근로자의 임금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아 구조적으로 임금을 낮추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더불어 인구 고령화가 임금 정체는 물론이고 임금 하락의 요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많은 기업들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정년을 연장하면서 근속연수에 따른 임금 인상 폭이 크게 낮아지고 있습니다.
과거 기업들은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려 공장 용지를 얻고 새 기계를 사는 투자의 주체였습니다. 하지만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경기도 크게 살아나지 않자 투자를 망설이게 됐죠. 반면 가계는 어떤가요. 가계부채가 사실상 1000조 원을 넘었습니다. 빚이 많다 보니 저축은 꿈도 못 꾸고 있습니다. 가계의 몫이었던 저축을 기업이 대신 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1990년대 초반 전체 저축에서 가계저축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에 육박했습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가계저축 비중은 감소한 반면 기업(비금융 법인)의 저축 비중이 빠르게 늘었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총저축 대비 기업저축 비중은 2000년 32.2%에서 2012년 49.1%로 상승했습니다.
기업저축 증가세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고유한 현상은 아니지만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봤을 때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기획재정부가 201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25개국의 기업저축률을 비교한 결과 한국은 4번째로 높았습니다. 2000년보다 여덟 계단이나 오른 결과입니다.
또 기업들이 투자나 고용 대신 자금을 쌓아두면서 대기업으로부터 중소기업을 통해 가계로 흘러가야 할 자금이 기업저축으로 돌아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일본 경제가 장기 불황 내내 내수 부진에 시달려온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임금 상승 없는 성장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1998년 이후 15년째 계속된 실질임금의 하락으로 평균 노동생산성과의 괴리가 갈수록 커졌고 내수침체가 가속화됐습니다. 이런 현상을 뒷받침하듯 일본의 기업저축률은 OECD 1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죠.
○ 투자 활성화 유도해야
2008년 이후 나타난 임금 없는 성장과 기업저축의 역설 현상은 가계보다는 기업 부문에 더 유리한 방향으로 소득이 배분돼 왔다는 걸 뜻합니다. 따라서 가계보다 기업에 유리하도록 맞춰진 소득 배분 구조를 가계와 기업 어느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고 각자가 기여한 부분만큼 돌아가도록 개선하는 것이 이를 극복하는 방안입니다.
전준모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더불어 기업들이 지나치게 많이 저축을 하지 않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사내 유보금에 대한 과세나 비금융 기업의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 방안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무엇보다도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걷어내는 것이 최우선 과제로 보입니다.
전준모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