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는 권모술수의 대가, 권력정치의 화신으로 일컬어진다. 저서 ‘군주론’에서 자신이 섬기는 군주, 피렌체의 로렌초 메디치에게 배신 잔인 사악 임기응변의 통치술을 권하는 듯한 책을 써 바쳤으니 그럴 만도 하다. 교황청은 이 책을 반(反)종교, 반도덕적인 금서(禁書)로 낙인찍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 같은 희대의 독재자들은 자기합리화의 도구로 군주론을 이용했다.
▷지난주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이사장 박경귀)가 군주론을 주제로 채택했다기에 호기심에 동참했다. 역시 책보다는 전문가의 해설이 이해하기 쉬웠다. 독일 훔볼트대에서 마키아벨리를 전공하고 군주론 번역서를 펴낸 성신여대 김경희 교수의 해설과 박 이사장의 설명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군주론에 대해 가졌던 고정 관념이 얼마나 편협했던가를 깨달은 소중한 기회였다.
▷마키아벨리는 철저히 현실정치에 바탕을 둔 통치술을 피력했다. 보통 사람들이 기대하는 이상정치와는 거리가 멀기에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일지 모른다. 그가 갈구한 것은 476년 로마 멸망 이후 1000년 이상 사분오열된 채 동족끼리 죽고 죽이는 각축전을 벌이고,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던 이탈리아의 통일과 부흥이었다. 그래서 그는 군주가 갖춰야 할 통치술로 급변 상황을 적시에 파악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여우 같은 교활함, 사자 같은 용맹함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면에 불과하다. 군주는 지배계층(귀족)보다 피지배계층(인민)의 지지를 얻는 것을 더 중시해야 한다고 마키아벨리는 조언했다. 군주 개인의 비르투(virtu·힘 또는 역량)보다 국가의 비르투를 키우는 데 더 주력해야 한다며, 고등법원 같은 제도를 만들어 귀족의 전횡을 견제하고 귀족과 인민 간의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는 예까지 제시했다. 일종의 법치다. 특히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외국군대나 용병에 의존해서는 결코 안 되고 자국민으로 구성된 시민군을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키아벨리를 공부하면 할수록 억울한 오명(汚名)이 덧씌워진 저술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