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6일 일요일 맑음. 뱀파이어와 백색왜성과 나.#96 VadimNeselovskyi ‘Spring Song’(2013년)
스물한 살 때, 우리 밴드의 공연 팸플릿에 자기 소개 대신 ‘난 아직 10대다’라고 썼다. 만 나이로라도 아직 10대라고 우기고 싶었던 거다. 어떤 피아니스트가 하루에 14시간씩 피아노를 친 이유도 그와 비슷할 거다. 인생은 유한하기 때문에, 죽거나 늙기 전에 다른 인간보다 인간들에게 더 인정을 받고 싶기 때문에.
정말 큰 달이 뜬 정월대보름에 공교롭게도 뱀파이어 영화를 봤다. 짐 자무시 감독(61)의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에 나오는 뱀파이어 아담(톰 히들스턴)은 어쩔 수 없는 천재 로커다. 400년 동안 기타를 친다면 얼마나 잘 칠 수 있을까. 20세기 초중반에 만들어진 오래된 기타와 각종 악기를 연주해 역시 그만큼 오래된 릴 테이프 녹음기에 기록하는 방식으로 그는 악기 박물관 같은 자택에서 홀로 음악을 만든다. 주로 아주 몽환적인 음악인 데다 익명에 가깝게 활동하는데 대중적인 인기까지 있는 모양이다. 미국 디트로이트의 쇠락한 교외에 비밀스레 숨은 그의 집에 잠입하는 10대 팬도 있으니까.
내게 시간이 500년쯤 더 있다면 진지하게 전기기타를 다시 들어볼 의향이 있다. 하지만 만약에 어딘가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면…. 하늘에 있는 누군가가 내게 백색왜성의 사운드를 들려준다면….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