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수 응원한 국민들 왜?
제2의 안현수 안 나오길…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29·왼쪽)가 한국 대표 신다운(21·서울시청)을 끌어안으며 격려하고 있다. 15일 러시아 소치 해안 클러스터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경기 직후다. 소치=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회사원 박주형 씨(29)는 15일 오후 친구들과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주점에서 소치 겨울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000m 경기를 생중계로 보다가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29)를 응원하는 자신의 모습에 묘한 감정을 느꼈다. 신다운(21·서울시청) 등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준결선과 결선에서 줄줄이 실격당하는 모습에는 혀를 차면서 러시아 국적인 안현수의 우승에는 오히려 통쾌함을 느꼈던 것. 박 씨는 “평소 애국심이 강하다고 느꼈는데 스스로 잠깐 당황했다”고 말했다.
한국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부진한 성적에 실망하고 안현수의 우승에 환호한 스포츠팬은 박 씨만이 아니었다. 팬들 사이에서는 한국 선수들의 경기력 약화와 안현수의 귀화를 방치한 국내 체육계가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대학생 유상영 씨(29)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일지라도 체육계가 개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안현수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태극마크를 달고 뛰다가 악재가 겹쳐 어쩔 수 없이 귀화했다는 점 때문에 연민이 느껴진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여론이 한국 대표팀으로부터 등을 돌린 계기로 신다운이 14일 대한체육회 공식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꼽는 팬도 있었다. 13일 남자 쇼트트랙 5000m 계주 준결선에서는 이호석(28·고양시청)이 넘어져 한국 대표팀이 탈락했다. 일부 누리꾼이 비난 글을 올리자 신다운은 “호석이 형은 후배들을 군 면제시켜 주기 위해 고생을 많이 했다. 제일 아쉬운 건 저희(선수)들인데 왜 여러분이 욕을 하느냐”는 글을 올렸다. 이에 일부 팬은 “올림픽 무대가 대표팀의 군 면제를 위한 곳이냐”는 논란이 일었다. 누리꾼들은 ‘대표팀은 병역을 성실히 수행하라’는 뜻을 담아 선수용 헬멧에 국방색을 입힌 합성 사진 등을 잇달아 올리기도 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신다운은 16일 페이스북에 “호석이 형이 후배들을 위해 그만큼 노력했다는 뜻이었는데 팬들이 ‘군 면제’라는 단어에만 치중하신 것 같아 안타깝다”며 “나는 병역 면제를 위해 운동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해명했다.
안현수(왼쪽)가 여자친구 우나리 씨와 함께 금메달 획득을 자축하는 ‘인증샷’을 공개했다. 안현수 인스타그램
한편 대한빙상경기연맹 공식 사이트는 15일부터 접속이 되지 않았다. 연맹에 항의하려는 누리꾼의 접속이 폭주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건희 becom@donga.com·권오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