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큐브는 방에서 방으로의 이동만이 무한 반복되는 폐쇄계, 그러니까 환승역이 존재하지 않는 순환선의 세계로 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아파트게임: 그들이 중산층이 될 수 있었던
이유(박해천·휴머니스트·2013년) 》
한국인의 아파트 사랑은 유별나다. 인구밀집지역인 도시부터 그 외곽지역은 물론 한적한 시골마을에 이르기까지 아파트가 없는 지역을 찾기가 힘들다. 지난달 주택금융공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63.1%는 가장 선호하는 주택 유형으로 아파트를 꼽았다. 프랑스 지리학자인 발레리 줄레조는 우리나라의 아파트 단지를 보고 한국을 ‘아파트 공화국’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 책은 아파트 구조물 안에서 꿈틀대는 중산층의 욕망과 삶을 다뤘다. 중산층이 되려고 아파트와 벌이는 게임의 현장을 생생히 보여준다. 중산층에 편입되려고 ‘복부인’이 된 평범한 가정주부, 더 큰 아파트로 이사 가려고 자린고비가 돼 가는 소시민 등의 사례를 든다.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박완서 구효서 박민규 등의 소설, 각종 통계와 논문을 바탕으로 상황을 설정해 사회상과 사람의 욕망을 읽어냈다.
갇힌 큐브라는 폐쇄된 공간의 이미지는 사회 초년병인 기자에게 충격적인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아파트에서 독립된 생활을 하는 우아한 직장여성을 꿈꿨던 기자는 서울 마포구의 한 큐브에서 생활하고 있다. 앞으로도 또 다른 큐브로 이동할지언정 아파트로 쉽게 환승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문득, 두려워진다. 오늘날 중산층은 ‘아파트 게임’을 통해 신분상승할 기회라도 얻었는데 현재 2030세대는 게임의 기회조차 봉쇄당한 건 아닐까. 책장은 바삐 넘어가지만 아쉽게도 환승역이 존재하지 않는 순환선을 벗어날 뾰족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