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세상을 바꿉니다]<1부>나는 동네북이 아닙니다 10년차 이상 고참 부부, 한마디가 중요하다
■ 내가 알아서 할게
이럴 땐 약 안기순 씨(43·결혼 22년 차)는 맞벌이 부부. 시댁에서는 안 씨를 가정과 일, 두 마리 토끼를 잡은 1등 며느리라고 칭찬한다. 안 씨는 남편이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하는 말에 큰 힘을 얻었다. 결혼 후 출산과 양육 문제로 퇴직을 고민할 때, 남편은 “나에게도 일을 맡기라”면서 육아와 가사를 적극 도왔다. 퇴근이 늦어져 저녁을 차려주기 힘들 때에도 남편은 미안해하는 안 씨에게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챙겨 먹을게”라고 말했다.
전문가가 봤을 땐… “신뢰 바탕으로 하면 든든, ‘간섭하지 마’로 보일 수도”
“내가 알아서 한다”는 말은 행동이 함께할 때 긍정적인 효과를 보인다. 이 말은 때로는 ‘날 믿어주면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돕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표현이어서 부부 간 애정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부부 사이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문제는 행동이 말을 따라가지 못할 때다. “알아서 하겠다”고 해서 일을 맡겨도 제대로 처리된 게 없으면 불만이 생긴다. ‘내가 알아서’라는 의미가 상황에 따라 ‘내 마음대로’라고 해석될 경우에도 갈등이 발생한다. 이는 곧 “간섭 좀 그만하라”는 뜻으로도 들릴 수 있으므로 조심할 필요가 있다.
■ 당신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이럴 땐 약 이상아 씨(53·결혼 30년 차)는 오랜 결혼생활에도 어딜 가나 ‘잉꼬부부’ 소리를 듣는다. 이 씨는 ‘매일 새롭게 발견하는 상대의 모습’이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첫 신혼집을 꾸밀 때 남편은 “군대에 있을 때 전문가처럼 배워왔다”며 도배 일을 자처했다. 말과 달리 서툴기 그지없었지만, 이 씨는 “당신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대단하네”라며 남편을 칭찬했다. 늘 칭찬을 해 주는 아내를 위해 남편은 더욱 적극적인 성향으로 변해갔다.
전문가가 봤을 땐… “인정받고 싶은 욕구 충족, 자주 하면 오히려 역효과”
“당신 이런 것도 할 줄 알아?”라는 말은 ‘인정받고 싶다’는 심리적 욕구를 채워준다. 하지만 때로 “당신 이런 건 못하는 줄 알았다”는 말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자칫하면 상대를 무시하는 발언으로 들릴 수 있는 것이다. 부부 사이에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인정해 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는 상대에게 강한 동기를 부여해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좋은 행동을 지속하려는 모습을 이끌어낼 수 있다. 다만 칭찬은 되도록이면 오해의 소지가 없는 표현으로 대체해 사용하는 게 좋다.
■ 하기 싫으면 억지로 하지 마
이럴 땐 약 강석경 씨(44·결혼 14년 차)는 식사를 마친 뒤 밥상을 정리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 음식물 쓰레기의 물기를 쥐어짜려던 참이었다. 정리를 돕고 싶었던 강 씨는 아내의 비위가 약하다는 게 생각났다. 강 씨는 “하기 싫으면 억지로 하지 마라”면서 “요즘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도 있던데, 그거 하나 살까”라고 말했다. 아내는 남편의 세심한 배려에 고마움을 느꼈다. 궂은 집안일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전문가가 봤을 땐… “대안 없이 하지말란 말, 불난 집에 기름 붓는격”
“하기 싫으면 억지로 하지 마라”는 말은 듣는 상대의 기분에 따라 극과 극의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물론 때로는 배려의 표현이 될 수도 있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한낱 지적에 그칠 뿐이다. 억지로 해야 할 일을 하는 상대에게 “싫으면 관두라”는 말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다. 결국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결해줄 의지가 없으면서도 무턱대고 이런 말을 던지면 화를 돋울 뿐 아니라 무책임하다는 인상을 주기 마련이다. 굳이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게 좋다.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