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행사장 붕괴 참사] 못다 핀 희생자들 애절한 사연
“얘들아, 김지수(가수)의 공연이 너무 재밌어.”
부산외국어대 아랍어과 신입생 강혜승 씨(19·여)는 17일 오후 7시경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부푼 꿈을 안고 대학생이 된 강 씨의 메시지를 받은 친구들은 그것이 친구의 마지막 인사말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울산외국어고 출신인 강 씨는 학창 시절 가족들과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도 한 가지 목표를 향해 학업에 매진했다. 바로 중동 지방을 누비며 한국을 대표하는 중동 전문가가 되겠다는 것. 하지만 강 씨의 꿈은 미처 피어보기도 전에 한순간에 무너졌다.
태국어과 2학년에 재학하며 태국 전문 관광가이드를 꿈꾸던 김진솔 씨(19·여)를 친구들은 ‘팔방미인’으로 기억했다. 김 씨는 1학년 때는 장학금을 받았을 정도의 노력파이자 2학년에 올라가면서 과대표를 맡는 등 선후배 사이에서는 리더십과 열정을 모두 갖춘 동료로 소문나 있었다. 친구들의 눈에는 내년에 태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 태국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할 생각에 들떠 있던 김 씨의 모습이 선하다.
고모 김모 씨(58)는 그를 ‘요즘 시대에 보기 힘든 효녀’였다고 떠올렸다. 김 씨는 “조카가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번 돈으로 부모님과 내게 비타민 등 영양제를 선물했다”며 “부모님의 생일과 결혼기념일까지 항상 챙긴 아이였다”고 말했다. 김 씨는 “하지만 조카는 정작 자기가 들고 다니던 가방 끈이 오래돼 끊어지면 수선해 쓸 정도로 검소했다”고 덧붙였다. 이야기를 하다 참았던 눈물을 터뜨린 그는 조카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김 씨는 “학교 측에서 재정 지원이 되지 않아 참가비용이 올라가면서 행사에 참가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한 명이라도 더 데리고 가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진솔이의 모습이 떠오른다”며 흐느꼈다.
비즈니스 일본어과 신입생 박주현 씨(19·여)의 언니 박재희 씨(22)는 동생의 옷과 신발이 눈에 아른거린다고 했다. 박 씨는 “입학식에 참석하기 위해 동생이 새 옷이랑 신발을 다 사뒀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며 절규했다. 박 씨는 “내가 대학교 4학년이어서 ‘주현이 입학하면 맛있는 거 사줄게’ 하며 지금까지 아르바이트 하면서 돈도 모아뒀는데…. 주현아”라며 흐느꼈다. 박 씨 어머니는 충격에 거의 말을 하지 못했다. 박 씨 어머니의 휴대전화 배경화면에선 하늘나라로 떠난 딸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어머니는 신입생 환영회를 떠나기 전 밝게 웃으며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한 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밟힐 뿐이다.
박 씨의 친구들은 일본어과에 진학해 교수가 되기 위해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열심히 일본어 공부를 해오던 학구파로 박 씨를 기억했다.
미얀마어과 신입생 김정훈 씨(20)의 매형 지정선 씨(44)는 “정훈이가 대학에 합격하기 전에 내가 ‘대학에만 합격하면 술 사줄게’라고 말했는데 결국 못 사주고 떠나보낸 게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 참사로 큰 충격에 빠진 부산외국어대 신입생 등 600여 명은 18일 오후 1시 10분경 20여 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부산 금정구 남산동 부산외국어대 캠퍼스로 돌아왔다.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버스에서 내린 학생들은 희생된 선후배들을 생각하며 침울한 표정으로 대학 체육관에 모여 이번 사고로 희생된 학우들을 애도했다. 이어 숨진 학생들의 분향소가 설치된 만오기념관을 찾아 분향하며 눈물을 흘렸다.
울산=백연상 baek@donga.com·강병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