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식 전 한양대 교수 컨슈머워치 고문
급기야는 간판에 ‘마트’자를 넣었다고 해서 동네슈퍼까지 규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바로 ‘상품공급점’ 이야기다. 요즘 동네 간판에 상품공급점이라고 쓰인 가게들을 보게 된다.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처럼 크지는 않지만 동네슈퍼보다는 훨씬 큰 규모여서 ‘슈퍼 슈퍼마켓’이라고도 부른다. 이마트 에브리데이, 롯데슈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같은 곳들이다.
상품공급점은 다른 작은 슈퍼마켓들에 물건을 공급하는 일도 한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물건을 팔기도 하지만 다른 작은 가게들의 도매상 역할도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상품공급점이라고 부른다. 이들이 도매상 역할을 하는 이유는 대량으로 물건을 사오기 때문이다.
대형마트보다는 작지만 동네슈퍼보다는 규모가 큰 ‘상품공급점’의 규제에 대한 논란이 많다. 상품공급점 중 하나인 롯데슈퍼. 동아일보DB
여기에 더해 도매업자들은 대형마트가 동네슈퍼에 상품을 공급할 때에도 도매상을 거치라는 요구까지 하고 있다. 한마디로 통행세를 내라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에는 소비자를 위하는 마음은 그 어디에도 없다.
소비자의 눈으로 보면 상품공급점은 반가운 존재다. 동네슈퍼가 대형마트와 거래를 하다 보니 오히려 슈퍼에 놓인 물건의 품질은 높아지고 값은 싸진다. 대형마트와 연결된 상호까지 간판에 표시할 수 있게 되니 신뢰성도 높아진다. 동네슈퍼의 약점인 비싼 가격과 낮은 품질을 대형마트가 보완해주고 있으니 둘 사이의 이상적인 상생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들 슈퍼에 납품하다가 납품할 곳을 잃게 된 전통 도매업자들의 처지가 딱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도매상들을 위해 소비자가 판매량이나 유통마진을 보장해줘야 할 이유는 없는 것 아닌가.
대형마트 규제에 대해서도 찬반의견이 많다. 확실한 것은 이 규제 덕분에 재래시장과 동네슈퍼가 회생한 게 아니란 점이다. 시장경영진흥원에 따르면 2012년 전통시장 매출은 오히려 전년도보다 1조 원이 감소했다. 규제를 받은 대형마트의 타격도 컸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이 1조 원 넘게 감소했다. 특히 강제 휴무가 시작된 후 1년 동안 7000명의 일자리가 줄었다.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농가·중소납품업체는 매출이 연간 3조 원 감소했다며 생존권 투쟁에 나서고 있는 중이다. 이득 본 사람은 없이 모든 사람을 피해자로 만든 것이 대형마트 규제다. 그중에서도 특히 소비자가 가장 큰 피해자다.
국회의원과 정부는 상품공급점처럼 새로운 유통방식이 등장하는 것을 막지 말라. 시장에서 누가 승리자일지는 소비자가 결정할 것이다. 미국의 유통기업 월마트도 처음에는 작은 가게였다. ‘매일 값을 깎아주겠다(Every Day Low Price)’며 소비자를 왕으로 섬긴 결과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고, 그래서 대기업이 되었다. 우리나라 전통시장과 영세·중소 슈퍼들도 우리 소비자를 왕으로 모시게 하라. 그러면 우리의 선택을 받아 큰 가게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는 왕이다. 왕의 ‘장보는 자유’를 막지 말라.
손정식 전 한양대 교수 컨슈머워치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