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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전문기자의 음식강산]오! 도다리쑥국… 통영은 맛있다

입력 | 2014-02-19 03:00:00


도다리가 혀끝에서 도리질을 친다. “도다리” 하고 가만히 중얼거리면 ‘ㄷ’과 ‘ㄹ’이 펄펄 요동을 친다. 봄이다. ‘몸’에 우우우 싹이 돋아 ‘봄’이다. 통영 앞바다 섬들마다 여린 해쑥들이 구물구물 지천이다.

통영사람들에게 ‘봄과 도다리쑥국’은 한 묶음이다. 설 지나 입춘이 다가올 쯤이면 그만 ‘입 몸살, 혀 몸살’로 달뜬다.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오지만’(이성부 시인), 통영사람들에게 ‘봄은 도다리쑥국을 먹어야 비로소 온다’.

도다리는 납작하고 마름모꼴이다. 좌광우도. 마주 보아 눈이 왼쪽에 쏠려 있는 것이 광어, 오른쪽에 눈이 모여 있는 것이 도다리다. 요즘 도다리는 두툼하고 살이 쫄깃하다.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도다리쑥국은 간단하다. 도다리 한 마리 탕! 탕! 두세 토막으로 잘라 넣고, 쌀뜨물에 된장 풀어 끓이면 끝이다. 된장 대신 천일염으로 간을 맞추는 식당도 많다. 뽀얗게 물이 우러난다. 쑥은 도다리가 자란자란 익었을 때 20초쯤 살짝 데칠 정도면 된다. 너무 오래 삶으면 쑥이 풀어지고, 향이 사라진다. 색이 노랗게 되면 질겨진다.

해쑥은 한산도, 소매물도, 용초도, 비진도, 연대도, 연화도, 욕지도, 추도, 사량도 등 통영 앞바다 섬에서 자란 것이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큰 것들이라 부드럽고 향기가 짙다. 비닐하우스 쑥은 도다리와 궁합이 맞지 않는다.

통영여객터미널 근처에서 2대째 분소식당(055-644-0495)을 운영하고 있는 김명숙 사장(49)은 “무엇보다도 도다리가 싱싱해야, 토실토실한 살점이 잇몸에 사르르 ‘어개지는(무너지는)’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분소식당의 ‘분소(分笑)’는 ‘웃음을 나눈다’는 뜻.

도다리쑥국은 양념을 많이 쓸수록 제맛이 사라진다. 간만 맞추는 게 보통이다. 언뜻 슴슴하고 밍밍하다. 하지만 순하고 담박하다. 향긋한 쑥 냄새와 담담한 도다리 맛이 두고두고 입안에서 맴돈다. 봄 도다리는 구워 먹어도 일품이다.

‘바람 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백석·1912∼1995·‘통영’에서)

통영의 봄은 맛난 게 흔전만전 ‘천지삐까리’다. 이드거니 배를 채우고, 어슬렁어슬렁 노량으로 거닐기 딱 좋다. 사는 게 뭐 별건가. 술꾼들은 서호시장 들머리(대장간골목) 허름한 원조시락국집(055-646-5973)이나 만성복집(055-645-2140)에서 쓰린 속을 다스린다. 시락국은 ‘시래깃국’의 통영사투리. 바닷장어뼈를 푹 곤 물에 시래기를 넣어 끓인다. 복국은 요즘 한창인 졸복을 쓴다. 멸치도 제철이다. 멸치회, 멸치조림, 멸치밥, 멸치회덮밥 등 새콤달콤 꼬소름하다. 부광횟집(055-646-8886)이 왁자하다.

점심은 생선구이가 안성맞춤. 서호시장 부근의 명촌식당(055-641-2280)은 늘 손님이 줄서 있다. 정오∼오후 2시, 오후 5∼8시에만 문을 연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꿀빵은 오미사집(055-646-3230)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땅거미 어둑어둑 내리면 술꾼들은 다찌집으로 향한다. 통영 다찌집 기본 한 상은 6만 원(2인 기준) 안팎. 소주 3병(맥주 5병)과 싱싱한 각종 해물안주 20여 가지가 나온다. 이후 소주를 한 병 추가할 때마다 1만 원씩(맥주 6000원) 더 받는다. 그때마다 새 안주가 곁들여지지만 공짜다. 문화마당의 대추나무집(055-641-3877)이 이름났지만 요즘은 한바다실비(055-643-7010)도 떠들썩하다. 멍게는 ‘바다의 파인애플’. 멍게비빔밥은 통영 어느 식당이나 기본이다. 상큼 쌉싸래한 맛이 입안에 쩍쩍 달라붙는다. 천하의 밥도둑이다.

서울에도 통영 도다리쑥국집이 있다. 다동 하나은행 본점 뒤 충무집(02-776-4088)은 매일 통영에서 직송된 생선과 해쑥으로 맛을 낸다. ‘한입에 쏙’ 엄지손가락만 한 충무김밥집(02-753-2009)도 그 부근에 있다. 경복궁역 금천교시장의 통영집(02-739-3322)도 빼놓을 수 없다.

통영바다는 요즘 봄빛이 자글자글하다. 바닷물이 뒤척일 때마다, 반짝반짝 윤슬로 눈이 시리다. 법정 스님이 행자생활을 했던 미래사의 편백나무숲 향기가 풋풋하고 그윽하다. 미륵산 꼭대기(461m)에 오르면 발밑에 수많은 섬들이 점점이 흩뿌려져 있다. 누가 물수제비를 올망졸망 저렇게도 앙증맞게 떠놓았을까. 간장종지 엎어 놓은 듯, 연둣빛 고깔섬들이 아슴아슴 아마득하다. 통영은 맛있다.

김화성 스포츠레저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