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초기 난해시 해독한 책 펴낸 경제학자 김학은 교수
난해하기로 유명한 이상 시의 수수께끼를 상당수 풀어낸 김학은 연세대 명예교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이상의 수필 ‘권태’를 읽고 이상의 매력에 빠졌으니 50년 만에 수수께끼를 푼 셈”이라며 “칠순 다 된 노인이 스물여덟에 죽은 청년의 시를 잡고 끙끙거리게 만들었으니 이상이야말로 고약한 젊은이”라며 껄껄 웃었다. 김학은 교수 제공
김학은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68)는 지난달 펴낸 ‘이상의 시 괴델의 수’(보고사)에서 이상이 1930∼34년에 발표한 46편의 시에 숨겨진 비밀을 풀어냈다.
1929년 ‘조선의 건축’ 표지도안 공모에서 3등상을 받은 이상의 작품(왼쪽)과 1917년까지 세계 최대 천체망원경이었던 영국 ‘파슨스타운의 괴물’을 그린 삽화. 파슨스타운의 괴물로 올라가는 양쪽 사다리를 제외하면 매우 닮았다. 보고사 제공
우주론의 역사를 다룬 일본 책 ‘우주관 5000년사’에 등장하는 우주팽창론을 설명한 그림. 이상의 시 연작 ‘건축무한육면각체’는 이처럼 사각형 하늘을 무한히 포갰을 때 건축되는 4각6면체의 우주를 배경으로 초신성이 폭발하고 유성우가 쏟아지는 풍경을 시적으로 포착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보고사 제공
김 교수는 이를 토대로 이상의 대표작 ‘오감도’ 제1호 시의 비밀을 풀었다. ‘十三人의兒孩가道路를질주하오’로 시작하는 이 시에서 ‘十三人의 兒孩’는 ‘1930년대의 아이들’을 말한다. 이 아이들은 막다른 골목길(길은막달은골목이適當하오)을 달린다. 막다른 골목은 우주 크기의 변화가 없다는 정상우주론과 연결되는 소우주론을 상징한다. 우주팽창론과 연결되는 대우주론은 시 후반부에 등장하는 뚫린 골목(길은뚫닌골목이라도適當하오)으로 형상화된다. 이 아이들은 골목길을 달리며 모두 무서움에 떨지만 ‘무서워하는 아이’와 ‘무서운 아이’로 나뉜다. 전자는 소심한 할로 섀플리(1885∼1972)로 대표되는 소우주론자이고 후자는 자신만만한 히버 커티스(1872∼1942)로 대표되는 대우주론자다. 결국 이 시는 1930년대 이뤄진 천체물리학의 논쟁과 발견을 형상화했다는 해석이다.
이런 독해는 다른 시에도 적용된다. ‘선에 관한 각서5’에는 ‘확대하는 우주를 우려하는 자여, 과거에 살으라’라는 시구가 등장한다. 또 ‘건축무한육면각체’ 연작시는 사각형 하늘이 무한 팽창한다는 팽창우주론을 숫자와 시로 형상화한 것이다.
김 교수는 “이상의 오감도 제6호 시 역시 괴델의 불완전성정리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불완전성정리는 모든 수학적 논리체계 내부에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없는 불완전 영역이 존재함을 입증한 것이다. 6호 시는 앵무가 포유류냐 아니냐, 소저(小姐·아가씨)가 부인이냐 아니냐는 논리적 모순을 다룬다. 게다가 ‘sCANDAL이란것은무엇이냐’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괴델은 수리공식을 쓸 때 s를 ‘바로 다음’이란 뜻의 기호로 썼다. 김 교수는 “참이냐 거짓이냐를 따질 수 없는 것이 소문(scandal)의 특징인데 이상은 소문이란 표현을 쓰면서 이를 괴델의 수학기호 s를 활용해 시적 변용을 가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은 19세 때 잡지 ‘조선의 건축’ 표지 공모에서 1등과 3등을 차지했다. 김 교수는 3등작 표지 도안이 1917년까지 세계 최대 천체망원경이었던 영국 ‘파슨스타운의 괴물’을 추상화한 것일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 도안은 시 ‘一九三一年’에 등장하는 ‘R靑年公爵’과도 연결된다. R청년공작은 파슨스 천체망원경을 세운 윌리엄 파슨스(1800∼1867)로, 그의 공식 칭호가 ‘로스(Rosse) 백작 3세’였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