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투쟁 지침서 ‘독재자의 핸드북’ 저자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뉴욕대 교수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교수는 뉴욕대 정치학과 석좌교수이자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고등연구원, 미국 정부 안보자문위원이다. 정치경제, 국제안보, 정치예측 전문가로서 지난 30년간 게임이론 모델을 통해 수많은 예측을 내놓았다.
많은 기업의 리더들은 조직 내에서 ‘정치’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효율성을 기반으로 시장원리에 맞춰 수익을 내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 기업에 ‘협잡’ ‘줄서기’ ‘권력투쟁’으로 상징되는 정치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사내 정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태도는 오히려 기업에 독이 될 수 있다. 하버드대의 린다 A 힐이 저서 ‘보스의 탄생’에서 “옳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영향력을 갖추라”고 조언하는 이유다. “나는 힘이 없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변명은 스스로에게 위안이 될지는 모르지만 망해버린 국가나 잘못된 방향으로 나간 기업을 회생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폭력을 쓸 수 없다는 제한 사항만을 지킨다면 왕이나 독재자들이 구사하는 권력의 획득, 유지, 행사, 승계의 방식은 기업의 리더에게 교훈을 줄 수 있다. 미국 정치학계 최고 석학 중 한 명인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뉴욕대 석좌교수는 ‘독재자의 핸드북’이라는 일종의 ‘권력투쟁 지침서’를 내놓았다. 그는 일반적인 정치학자들처럼 국가들 사이의 관계나 정부나 의회, 공공기관 등에 대한 연구에 그치지 않고 고대 왕조와 현대판 절대왕정 북한 김정은 체제의 세습 문제, 미국 내 각 기업의 권력투쟁 양상을 모두 다뤘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는 최근 부에노 데 메스키타 교수와 e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권력을 얻는 방법은 무엇인가.
“어느 집단이든 권력을 장악하고 싶은 도전자는 다음 세 가지만 실천하면 된다. 첫째, 집권자를 제거한다. 둘째, 정부기관을 장악한다. 셋째, 새 통치자로 살아남기에 충분한 지지자 연합을 형성한다. 물론 이 세 가지 각각의 단계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과제다. 그리고 이 세 단계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속도다. 반란 세력의 규모는 실제 유권자(기업에서는 주주) 수보다 훨씬 적다. 속도감 있게 핵심부서부터 장악해 나가야 한다.”
―일단 속도감 있게 권력을 잘 장악했더라도 며칠 만에 뒤집히는 사례도 많다.
2011년 출간된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교수의 책. 2012년 한국어판이 나왔다.
“권력을 잡았으면 지지자들에게 보상부터 해야 한다. 권력을 잡은 뒤 혹시나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지지자들의 두려움을 완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나중에 버릴지라도 처음엔 무조건 보상해야 한다. 자신의 측근이 됐다면, 그리고 잠재적 도전자가 아니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상하고 챙겨라. 이를 위해 권력을 장악한 사람은 ‘지급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권력 획득 후 재무부서와 같은 핵심부서부터 접수해야 한다. 재정위기는 곧 도전자들에게 ‘공격할 적기’임을 암시한다. 러시아 혁명을 생각해보자. 흔히 사회주의 혁명 이념에 따른 계급투쟁으로 알고 있는데, 혁명세력이 승리할 수 있었던 궁극적인 원인은 차르가 군부에게 보상을 해주지 않아 혁명군을 진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업도 상장 이후에는 ‘주주에 의한 견제’가 작동한다. 이럴 때에는 어떻게 권력을 획득하나.
“견제 세력이 있는 상태는 민주국가와 같은 경우다. 민주국가의 경쟁은 몸싸움이 아니라 머리싸움이다. 처칠은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런 그도 전쟁 직후 클레멘트 애틀리가 이끄는 노동당에 졌다. 아이디어 싸움에서 졌기 때문이다. 노동당 리더는 전후 피폐해진 국민의 삶을 복구하기 위한 전 국민 건강보험 도입과 복지국가 건설을 내세웠다. ‘긴축’으로 또 한 번의 희생을 요구했던 처칠은 질 수밖에 없었다.”
―권력 획득 이후 잠재적 도전자의 관리는….
“이번엔 최고경영자(CEO)의 사례로 설명해보겠다. CEO 역시 쿠데타를 당하기 쉽기 때문에 보통 이사회와 고위임원진으로 구성된 기업 내 주요 세력을 주시해야 한다. 가급적 충신을 영입하고, 도전하거나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인물을 미리 제거해야 한다. 특히 기업 내 10명 정도 되는 ‘소규모 핵심집단’ 내에서 이해관계가 갈릴 때, 이를 조정하지 못하면 CEO가 축출된다. HP의 대주주들은 주가 상승을 원했지만 옛 CEO였던 칼리 피오리나는 컴팩과의 합병을 통해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고 개인적으로 급여와 스톡옵션을 통해 보상하려 했다. 그러나 잠재적 도전자들은 이에 불만을 갖고 결국 피오리나를 축출했다. 특히 합병 이후 권력 재편 과정에서 자신들의 자리가 위험해질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이를 주도했다. 만약 피오리나가 정적을 제거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회사를 더 이끌고 싶었다면 합병에 미온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에게 자신의 자리가 위험할 수 있다는 인식을 줘선 안 됐다. 합병 이전에 핵심집단에 대한 ‘충성심 확보와 확장’을 통해 미리 힘의 균형을 바꿔 놨어야 했다.”
―권력 행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혁신의 성공이나 기업의 성장이 CEO의 권력을 강화시켜 주지 못한다. 적절한 행사가 중요하다. 스티브 잡스조차 애플 내 권력투쟁에서 패배해 쫓겨난 적이 있지 않은가. 조직의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바꿔야 한다. 실적이 좋다고 자신에게 유리한 조직구조가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에게 유리한 구조가 실적을 만들어낸다. 권력 행사는 결국 자원을 배분하는 일이다. 핵심집단에는 큰 규모의 개인적 혜택(인센티브, 급여)을 주고, 중간층인 대중에게는 상당한 양의 공공재(복지)를 제공하면 된다. 무능이나 무지로 인해 힘이 약한 사람들은 원래 반란도 못 일으키기 때문에 내버려 두면 된다.”
―CEO가 ‘혁신 반대 세력’을 장악하고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시기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 CEO가 심지어 자기 자신도 포함돼 있을 수 있는 ‘반혁신 세력’을 규제하고자 할 때를 잘 선택해야 한다. 혁신은 그 자체로 기업의 실적을 향상시킬 수 있지만 여러 정치적 권력 라이벌을 양산해 낸다. ‘진짜 경쟁자’들을 만들어내는 데 동의할 리더는 없다. 혁신이 가능한 때는 혁신 성공 이후 등장할 잠재적 도전자들조차 통제할 수 있을 때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