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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이재명]실패와 실력

입력 | 2014-02-20 03:00:00


이재명 정치부 차장

2005년 12월은 끔찍했다. 사회부 사건팀의 부팀장이던 그때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 사건이 터졌다. 한 달간 야근에 시달렸다. 몸보다 괴로운 건 머리였다. 외계어투성이 논문을 붙잡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세상에 줄기세포가 나무에 있어야지 왜 사람에게 있단 말인가. 무너져 내린 ‘황우석 신화’의 잿더미 속에서 그렇게 한동안 허우적댔다.

몇 달 전 황 박사를 만났다. 얼굴은 다소 수척했지만 자신감만은 여전했다. 그의 연구소엔 각종 복제견이 가득했다. 2001년 미국 9·11테러 당시 마지막 생존자를 구한 영웅견 ‘트래커’를 복제하는가 하면, 대통령의 외부 행사장에서 폭발물 탐지 임무를 맡은 ‘캅스’도 그의 작품이었다.

그의 최대 프로젝트는 매머드 복원이다. 1만 년 전 지구에서 사라졌다는 코끼리 사촌 말이다. 지난해 러시아 사하 공화국 동토에서 냉동 상태인 매머드 살점도 떼 왔다. 3만5000년 전에 죽은 거란다. 젖꼭지가 통통한 게 60세쯤 된 암컷이라고 했다. 멸종동물을 되살린다면 노벨상이 문제겠는가.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대리모(代理母)로 쓰일 코끼리와 매머드는 종(種)이 다를 뿐 아니라 한 단계 큰 분류인 속(屬)도 다르다. 지금까지 이속(異屬) 간 복제는 성공한 적이 없다. 그가 말했다. “불가능에 도전한 것이 과학의 역사다. 현재 의미 있는 진전이 있어 우리 세대에 뭔가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정작 내 관심사는 매머드가 아니었다. 태양을 향해 돌진하다가 날개가 녹아내려 하염없이 추락한 이카로스가 어떻게 다시 날 생각을 했느냐가 더 궁금했다. “논문 조작 사건은 신의 계시다. 만약 그 일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건달이 됐을 게다.” 순간 황 박사의 눈동자를 유심히 살폈다. 내 안의 거짓말탐지기가 작동한 것이다. 그의 말이 진심이라면 “코끼리가 매머드를 낳아 많이 놀라셨죠?”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실력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했을 때 빛난다. 성공은 실력만으로 이룰 수 없다. 주변 환경이 받쳐줘야 한다. 하지만 실패했을 때는 부단히 실력을 쌓는 것 말고는 탈출 방법이 없다. 빅토르 안(안현수)이 그랬던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1년을 맞는 25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한다. 지난 1년간의 긴 워밍업을 끝내고 박근혜 정부의 진짜 실력을 선보이는 순간이다. ‘말이 아닌 행동’을 강조하는 박 대통령이지만 불행하게도 지난 1년 박 대통령의 말만 남았다. 인사 실패에서 비롯된 경제팀의 리더십 공백, 공약 후퇴 논란 속에서 얼마나 실력을 길렀는지 조만간 판가름 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사자가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하지 않느냐”고 했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사자는 첫 번째 사냥을 실패하면 두 번째 성공 확률이 20%대로 떨어진다고 한다. 경제혁신 계획이 과거 경제개발 계획의 증보판에 그친다면 박근혜 정부의 성공 확률도 그만큼 낮아질 것이다.

이재명 정치부 차장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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