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로드먼은 김정은을 “사랑하는 친구”라고 부른다. 그는 “NBA 역사상 가장 리바운드를 잘 잡는 포워드”라고 기록될 정도로 뛰어났던 선수. 그러나 싸움, 자살 시도 등 경기장 안팎에서 숱한 사고를 일으키고 기행을 일삼았다. 은퇴 후 이혼 자녀 양육비가 80만 달러나 밀려 법정에 섰다. 지금도 알코올의존증으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그런 로드먼이 김정은을 몇 번 만나면서 “적대적인 미국과 북한 사이의 얼음을 깨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말할 정도가 되었다. 자신은 1972년 미중 수교의 물꼬를 튼 ‘핑퐁 외교’에 버금가는 ‘농구 외교’를 펼치고 있다는 것. 그는 짐짓 “오바마가 할 일이 왜 나에게 떨어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도 “다음 노벨 평화상의 유력 후보 3명 안에 내가 들지 못하면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 큰소리치기도 한다.
그레그는 이런 로드먼을 “이상하지만 근사하고 똑똑한 운동선수”라며 그의 방북 활동을 높이 평가한다. 국제무대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레그가 로드먼이 국가 간 외교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레그는 10일부터 나흘간 평양을 방문했다. 그는 “북한은 미국의 B-52 폭격기 출격에 화가 나 케네스 배를 노동교화소에 다시 보냈다”고 말했다. 늘 미국을 핑계 대며 어떤 행동도 정당화하는 북한을 그대로 대변했다. 북한은 대화를 원하나 미국이 위협하고 홀대하기 때문에 두 나라 관계가 정상화되지 않고 핵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줄기찬 자신의 주장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레그는 김정일을 만난 뒤 “그는 아주 똑똑하다. 북한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핵 실험 직후에도 “김정일은 생존을 위해 핵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변호했다. 김정은에 대한 그의 애정은 로드먼 못지않다. “김정은은 할아버지나 아버지보다 외국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안다. 아마 북한을 더 서구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그의 미래를 낙관했다. 또 “서울이나 워싱턴의 비판자들은 김정은을 으레 악마로 만들고 있다”고 옹호했다.
하지만 그레그가 스스로 밝힌 자신의 신념이나 한국에서의 업적을 보면 김정일이나 김정은을 감싸기는커녕 그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야 마땅해 보인다.
그는 CIA 서울 책임자 시절 박종규 경호실장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 정권의 2인자였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해임토록 했다고 한다.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가 중앙정보부 조사 과정에서 숨진 것이 고문과 관련되었다는 정보에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미국을 불신한 박 대통령이 핵 개발을 지시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본국에 보고해 그 계획을 단념토록 했다는 것에도 자부심을 갖고 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이 박 대통령을 싫어한 것은 핵을 개발하려 한 독재자였기 때문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레그는 “모든 강력한 지도자에게는 나쁜 뉴스를 보고하는 장관이 필요하다”는 말을 박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도 한다.
그런 그가 정치범수용소 등에서 벌어지는 북한의 고문에 대해 김정일에게는 무슨 항의를 했는가. 고문 정도가 아니라 장성택과 그 일파를 순식간에 처형해 버리는 김정은에 대해서는 어떤 항의를 전달했는가. 미국을 불신해 핵을 개발했다는 김정일에게 핵을 포기하라고 권유한 적이 있는가.
남한의 고문 등 인권 상황을 걱정, 비판하고 핵 개발을 우려하던 그레그는 과거 그의 신념과는 달리 북한의 인권과 처형, 핵에는 한마디 못하고 북한 주장만 대변하고 있을 따름이다. 북한을 보듬기 위해 기행의 농구선수 로드먼과도 어우러지는 그의 처지가 안쓰럽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