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조 발전소’를 가다]<5·끝>미국 패서디나 아트센터디자인대학
미국 아트센터디자인대학(ACCD)에는 강의실 대신 실습실이 있다.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직접 제작까지 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실리콘밸리와 가까운 ACCD는 미국 동부 예술의 메카인 뉴욕의 예술대학들과 달리 학생들이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팔리는’ 작품을 제작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로스앤젤레스=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작전명처럼 날카로운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이지만 고도의 정보기술(IT) 지식이 없으면 생각해내기 힘든 3차원(3D) 비디오 합성, 음악 믹싱 기능을 갖춘 액세서리들을 제안했다. 이들이 참여한 서피스 신제품은 올해 초 출시돼 ‘기발하다’ ‘혁신적이다’는 반응을 얻었다. 학생들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제품 개발로 이어지는 과정에도 참여했다. 이 중 상당수 학생은 MS로부터 취업 제의를 받았다.
ACCD는 미 서부의 대표적인 종합예술대학이다. 학교는 로스앤젤레스 인근 패서디나에서 산길을 20분 정도 차로 올라간 곳에 있다. 11개 전공분야에 학사와 석박사까지 2000여 명이 재학 중인 ACCD는 예술창작 시설과 기구를 유지하는 데 큰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교외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테리 본드 ACCD 마케팅국장은 “캠퍼스가 산속에 있다 보니 학생들은 도시의 산만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아이디어 개발에 전념할 수 있다”고 말했다.
ACCD가 뉴욕의 예술학교들과 다른 점은 기업과의 연계성이 높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실리콘밸리와 가깝다는 이점을 살려 IT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적용되는 예술 분야가 발달했다. MS뿐만 아니라 전 세계 기업들이 ACCD를 찾아와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경청하고 이들과 공동작업을 한다. 삼성도 1995년 일찌감치 ACCD에 300만 달러(약 32억 원)의 기금을 설립해 디자인 전략을 공동 개발하고, 디자인 마케팅 공학 인력을 ACCD로 연수 보내기도 한다.
최근 기자가 자동차 디자인 실습실을 찾았을 때 졸업반 학생들이 대형 자동차 모델을 만들고 있었다. 학생들은 대개 2학기에 걸쳐 졸업 작품을 제작한다. 자동차 모델에는 폴크스바겐, 마쓰다, 도요타 등 유명 자동차 로고가 붙어 있었다. 학생들은 졸업 작품을 준비할 때가 되면 자동차 업체와 접촉해 새로운 디자인 콘셉트 개발과정에 도움을 받는다. 졸업 작품 전시회 때는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도 대거 참석한다. ‘창작 과정이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흐를 수 있다’고 지적하자 학생과 교수들은 “기업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반박했다.
ACCD 학과 과정은 실생활에 도움이 되고 이윤 창출이 가능한 예술 작품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 학생들은 비즈니스코스를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프레드 펠로 ACCD 학장은 “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커리큘럼을 운영한다. 학생들에게 ‘너의 작품을 어떻게 시장에 내놓을 것이냐’를 계속 고민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ACCD는 지난해 6월 명문 공대인 캘리포니아공과대(Caltech)와 손잡고 ‘디자인 액셀러레이터’라는 창업 인큐베이터를 설립했다. 두 학교의 졸업생과 재학생들 가운데 혁신적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 IT 창업자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수천 명의 지원자 중 선발된 20여 명의 창업자는 지원금과 교수진의 조언을 받고 학교 시설을 3개월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
▼ 첨단 예술 집중 육성하고 기업에 이어줘 ▼
LA카운티 미술관의 ‘아트 앤드 테크 이니셔티브’ 프로그램
미국 LA카운티 미술관(LACMA) 입구. 202개의 가로등으로 만든 크리스 버든의 설치 작품 ‘어번 라이트’가 이곳의 명물이다. 로스앤젤레스=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ATI는 첨단기술이 가미된 예술 작품 제작에 자금을 대주고 예술가를 정보기술(IT) 기업들과 이어주는 프로그램이다. 구글, 스페이스X, 액센추어, DAQRI, NVIDIA 등 5개 IT 기업이 작품 제작에 자문역할을 해준다. 올해 첫 회인데 최근 마감된 공모전에는 475개 작품이 출품됐고 4월 2∼5개 작품이 최종 선발된다.
LACMA는 1967년부터 1971년까지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한 적이 있다. 앤디 워홀, 제임스 터렐, 클래스 올덴버그 등 미국을 대표하는 팝아트 설치 예술가들이 당시 LACMA의 지원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이때 사용된 첨단기술은 자동차와 우주항공 기술이 대부분이었는데, LACMA와 일본 오사카 엑스포에 순회 전시됐던 워홀 등의 작품은 지금도 예술계에서 회자된다.
로스앤젤레스=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