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원내 책상에 앉아있는 김달수 AGF사무총장. 한국기원 제공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한국 바둑규칙의 문제점 분석 연구'(지도교수 정수현). 명료해 보이는 바둑규칙에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고개를 갸웃하게 되지만 그의 설명을 들으면 수긍이 간다.
먼저 귀곡사 문제다. 현행 바둑규칙에서는 '귀곡사는 죽음'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그게 간단치 않다. 먼저 그 이론적 근거가 '패후마(팻감을 없애고 잡으러 갈 수 있기 때문에 귀곡사는 죽음)' '잡으러 갈 수 있는 권리' '부분으로 떼어서 판단' 등으로 규칙을 개정할 때마다 계속 바뀌어왔기 때문에 설득력이 약하다는 게 그의 논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假) 종국 후 교대 착수의 원칙'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또 '삼패 장생 등 동형반복의 경우 무승부'라고 한 바둑규정은 바둑의 박진감을 떨어뜨린다며 주기의 개념을 도입해 해결하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주기의 마지막 수를 금지하면 패처럼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 종국의 처리 등에 대해서도 제언을 했다.
65세의 나이에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당연히 바둑에 대한 열정 때문. 잘나가던 기업가인 그가 제2의 인생을 바둑에 던지기로 결심한 것은 50세 무렵부터. 노후에 무엇을 할까 궁리하다 남들도 인정해주고 앞으로도 잘할 것 같은 바둑이 눈에 들어왔다.
바둑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달수 AGF사무총장. 한국기원 제공
그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60세까지 가장역할을 나름대로 충실히 해왔으니 '이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고 선언했다. "LG상사 시절 터키 이스탄불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주재할 때 같이 간 세 자녀(1남 2녀)에게는 '이곳 아이들처럼 18세가 되면 독립해야 한다'는 것을 일찍부터 이야기해왔기 때문에 자녀들에 대한 부담도 없었다. 물론 무 자르듯 지원을 딱 자르지는 못했지만(웃음)." 큰딸은 미국에서 공인회계사(CPA)로 일을 하다가 요즘은 독일에 체류 중이고, 아들은 정보기술(IT)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작은딸은 아버지처럼 무역 쪽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그는 회사를 넘기기 전부터 이미 바둑계 일에 깊숙이 관여해 2006년 AGF 사무총장을 맡았다. 2008년에는 대한바둑협회(대바협) 국제분과위원장도 겸임했다. 그는 그때부터 바둑 두는 걸 사실상 끊었다고 했다.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바둑을 둘 때는 습관적으로 남의 바둑판에 눈이 먼저 가는데, 안둔 지 3년쯤 되니까 바둑판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로 눈이 먼저 가더라는 것. 바둑판을 읽지 않아도 대국자의 얼굴에서 형세를 볼 수 있게 됐다.
그가 바둑을 배운 것은 중학교 때. 이미 고등학교(덕수상고) 2학년 때 아마 4, 5단의 실력자였다. 1968년 중앙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뒤 이듬해 휴학을 했다. 입단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예선에서 실력 차이를 확인하고는 미련 없이 프로의 꿈을 접었다. 중앙대 바둑대표로 이름을 날렸다. 신병식 경성대 교수(전 SBS 해설위원)가 당시 서울대 대표였고, 한철균 프로, 이해범 씨 등이 고려대 대표였다.
윤양섭 전문기자laila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