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현장 잡아라” 시동 끈 자동차 속… 잠복근무 밥먹듯
“형사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는 특징 없는 검은색 등산 점퍼에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었다. 얼굴은 꺼칠하고 피곤해보였다. 하지만 일 이야기가 나오자 눈이 빛나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사회부 사건기자 시절 만났던 경찰서 강력팀 막내 형사들과 옷차림이며 표정이 닮아 있었다. 채널A ‘먹거리X파일’팀 배한수 PD다.
“형사가 나쁜 사람을 잡는다면 우리는 나쁜 먹거리를 잡아요. 나쁜 현장을 포착하려고 전국 냉동 창고를 누비다 보니 잠복이 생활이 됐죠. 등산복 스타일은 어딜 가나 눈에 띄지 않으니까 늘 입어요.”
그는 지난해 12월 1일 오전 7시 제주 제주시 화북동 한 돈가스 전문점에서 30m 떨어진 공영주차장에 12인승 승합차를 세웠다. 후배 PD와 함께였다.
차 안에는 망원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를 설치했다. 차 유리창은 옷가지와 천으로 가려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게 했다.
“자동차 시동을 걸면 진동으로 카메라가 떨리니까 난방을 켤 수 없었어요. 제주의 바닷바람이 강해서 옷을 두껍게 껴입어도 추웠지요. 어두컴컴한 차 안에서 카메라 렌즈만 바라보며 벌벌 떨었어요.”
아침부터 밤까지 꼬박 10시간씩 관찰했다. 김밥 라면 빵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5일이 지나자 돈가스 전문점 주인이 하루 몇 번 배달하는지부터 식재료는 어디서 구입하는지, 주 고객층은 누구인지까지 식당의 ‘착한 경영’ 상황이 배 PD의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다. 이제 ‘착한 현장’만 포착하면 임무 끝이었다.
몰래 카메라에는 주인이 저가 식재료의 유혹을 단칼에 거절하고, 3000원밖에 없는 할머니를 따뜻하게 대접하는 모습이 담겼다.
“주인이 몰래 카메라 테스트를 통과했을 때 잠복하며 했던 고생이 눈 녹듯이 사라졌어요. 그분들이 실패하면 실패 과정까지 화면에 공개해야 하는데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팠거든요. 신장 이식수술을 받은 주인 부부가 착한식당 비법을 전수받아 튀김가게를 열어 새 출발하는 날, 정말 제 일처럼 기뻤습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