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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中 지식인 사회의 위선 소설로 고발

입력 | 2014-02-22 03:00:00

◇풍아송(風雅頌)/옌롄커 지음·김태성 옮김/616쪽·2만1000원·문학동네




주인공 양커는 권위 있는 ‘시경(詩經)’ 연구자이자 베이징 유명 대학의 교수다. 중국 최초의 시가 모음집 시경을 5년간 연구해 오십만 자 분량의 원고를 완성한 뒤 집으로 돌아오지만 침실에는 아내이자 동료 교수인 자오루핑과 부총장 리광즈가 함께 뒹굴고 있다.

중국 정신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시경을 파고드는 양커를 둘러싼 지식인 사회는 부조리 그 자체다. 겉은 점잖고 번드르르하지만 한 겹만 들추면 사방에 피어난 곰팡이가 발견된다.

경제성장률의 상승 곡선 아래서 순수학문의 가치는 내팽개쳐진다. 연 8% 성장하는 동안 시경 관련 논문을 쉼 없이 발표했고 원고료가 속속 들어왔다. 10% 성장했을 때 논문이 발표돼도 원고료는 없어졌고, 12% 성장하던 해에는 원고료는커녕 논문 발표와 출판을 위한 비용이 청구됐다.

인기를 누린 시경 강의는 어느새 ‘사회의 미라’가 되고 말았다. 유명 스타나 감독의 시시콜콜한 일상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늘진 곳을 전전하던 양커는 대학생들과 우연히 행동을 함께하다 교수사회의 정치적 표적이 되면서 정신병환자로 몰린다.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양커는 그리운 고향 바러우 산맥으로 돌아간다. 그가 평생을 연구해 온 시경 강의에 귀 기울이는 이는 정신병자와 어린 접대부들뿐이다. 진짜 시의 고향을 찾아 나선 양커는 황허 강 기슭 고성에서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 공동체를 구축한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히는 옌롄커(閻連科·56)의 2008년 작품이다. 풍아송은 시경의 분류 체계로, ‘풍(風)’은 남녀 애정을 다룬 민요와 민가, ‘아(雅)’는 조정의 의식에서 불린 시가, ‘송(頌)’은 선조의 덕을 기리는 종묘 제의용 악시다. 소설은 이 세 개의 장이 돌림노래처럼 돌아가며 반복된다.

소설이 출간됐을 때 “베이징대를 겨냥했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당시엔 나 자신에 대한 비판이라고 했던 작가는 “‘풍아송’은 대학에 대해, 교수들에 대해, 오늘날 중국 지식인들의 나약함과 무력함, 비열함과 불쌍함에 대해 쓴 작품”이라고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혔다. 중국을 한국으로 바꿔 읽어도 낯설지가 않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