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子의 취향, 레고
레고 애호가인 직장인 설우신 씨가 자신의 집에서 6세 아들과 함께 레고를 조립하고 있다. 김선아 포토그래퍼 제공
‘아빠는 멋쟁이’는 극중 12세의 리키가 이혼한 백만장자 아빠와 살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리키의 집에는 그 시절 오락실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게임기가 몇 대씩이나 있고, 정교한 모형 기차도 수많은 장난감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장난감보다 더 부러웠던 것. 바로 리키의 아빠가 항상 아들과 대화하고 놀아주며 부비고 안아주는 모습이었다.
백만장자 아빠랑 살면 나도 저런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그렇게 속으로 되뇌던 초등학생이 이젠 여섯 살의 아이를 둔 아빠가 되었다. 난 어떻게 달라졌을까. 내가 그 시절 그토록 원했던 모습대로 난 ‘아빠는 멋쟁이’가 되었을까. 3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레고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가 세 살 정도가 되면 유독 좋아하는 것들이 생기고 그것이 테마를 이룬다. 우리 아이의 테마는 우주였다. 집사람과 나는 모든 것을 우주에 맞췄다. 유튜브 동영상 즐겨찾기는 나로호 발사, 태양계 동영상 등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아이 방 벽지도 우주선이 가득한 우주공간이 됐다. 우리 아이가 곧 우주 과학자가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뭔가 아쉬웠다. 제대로 된 우주선을 아들에게 보여 주고, 만들어 주고 싶은데 마땅한 모형이 없었다. 인터넷을 샅샅이 뒤지다가 나도 모르게 “악!” 소리를 지르면서 발견한 것이 우리가 그토록 찾던 ‘레고 시티 3367 우주왕복선’이다. 빛의 속도로 주문한 제품이 배송된 후 떨리는 마음으로 상자를 뜯고 가지런히 정리된 블록의 포장 비닐을 뜯으며 시작된 감동은 레고를 조립하는 내내 사그라지지 않았고, 그 느낌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정교한 레고 블록이 서로 맞을 때 나는 ‘딸깍’ 소리는 듀폰 라이터 뚜껑이 열릴 때 나는 ‘띵∼’ 소리에 견줄 만하다. 블록의 정교한 맞춤에서 오는 손맛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낚시꾼이 놓친 월척의 손맛 허풍보다 더 허황되게 들릴테지만.
각각의 블록이 맞춰져 모양새를 갖춰갈 때마다 아이의 감탄사가 터진다. 아이의 맑은 눈빛에 투영된 아빠는 이미 아이의 영웅이다. ‘아빠는 멋쟁이’가 된 자부심에 으쓱하다.
블록 수가 많지 않아 만들기 쉬운 레고부터 아이와 함께 했다. 아이와의 모든 대화는 레고로 시작해 레고로 끝난다. 우리의 모든 삶의 방식과 역사가 레고 블록의 모든 시리즈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현 시대를 대변하는 레고 시티 시리즈에는 경찰, 소방차, 건설 장비, 비행기 등 어린 남자 아이들이 꼭 한 번은 열광할 요소들이 들어 있다. 이 밖에도 공룡(레고 디노), 판타지(레고 키마), 영웅(레고 히어로), 전투(레고 캐슬) 등 아이들이 환호하는 시리즈들이 무궁하다.
주변에서 “회사일 하면서 아이와 놀아주느라 고생한다”는 말을 내게 할 때마다 난 속으로 작은 고해성사를 한다. ‘사실 아이가 나와 놀아 주느라 고생인데, 나와 레고로 가장 잘 놀아 줄 수 있는 친구는 우리 아이인데’라고.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 그 행복은 나와 가족이 함께 나누고 느낄 때 빛을 발하는 것이다. 올해 어린이날 즈음하여 황금연휴가 달력에 표시되어 있다. 레고가 탄생한 덴마크의 작은 마을 빌룬트행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며 레고 성지 순례의 꿈을 꾸어 본다.
글: 레고 애호가 직장인 설우신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