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아이가 저만치 뛰어가자 아이 엄마가 “부모들이 너무 힘들었어”라고 속삭였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담임교사가 아이들을 태도에 따라 5등급으로 매기고, 종종 학부모 휴대전화로 알려주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어느 날 ‘△△이는 4등급입니다. 친구들과 다투고 산만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받은 부모를 상상해보라. 고작 일곱 살짜리 아이를 붙잡고 “도대체 학교에서 처신을 어떻게 하는 거냐?” “누구랑 왜 싸웠는지 당장 말해”라며 경을 칠 확률이 90%다. “애를 어떻게 키웠기에 벌써부터 4등급짜리냐”며 부부싸움이 발생할 확률도 50%는 될 거다.
곰곰 생각할수록 비교육적인 처사로 느껴졌다. 그러나 학부모가 담임의 문자 메시지에 “이런 방식은 비교육적인 것 같습니다”라고 답장을 보낼 확률은 0%일 거다.
동네 아이 엄마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 얘기를 꺼냈다가 더 씁쓸한 말을 들었다. 인근 초등학교의 학부모들이 봄방학 이후 담임교사 배정표가 발표되기 전까지 삼삼오오 모여 기도를 했다는 것이었다. 학부모 사이에 기피 대상 교사 족보가 도는데, 행여 자기 아이의 담임이 될까 봐 걱정돼서 그랬다고 한다. 그 가운데 한 교사는 성적과 경제사정에 따라 아이들을 가르고,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에게 “너희 그 따위로 하면 OO네 집처럼 살아야 된다”고 훈계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물론 이런 교사는 극히 드물다. 문제는 극소수의 이런 교사가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구도 지적하거나 제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마다 교사가 바뀌는 중고교와 달리 교사 한 명이 1년 내내 아이를 전담하는 초등학교에서는 담임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교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교장도, 교감도 들여다볼 수 없다. 부모들은 학기 중에 괜히 나섰다가 자칫 자기 아이가 찍힐까 두려워 어지간하면 입을 닫는다. 1년 내내 속을 끓이다가 학년 말이 돼서야 뒷담화를 퍼뜨리는 게 최대한의 저항이다. 이듬해 이런 담임을 만난 학부모들은 또 묵묵히 1년을 견딘다.
정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원평가를 제대로 하겠다고 공언하지만 현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정부는 2010년 교원능력개발평가를 전면 개편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3년 치 시행 결과를 들여다보면 허탈하다. 교육당국은 학생, 학부모, 동료 교사가 ‘미흡’ 판정을 내린 교사에 대해 어떤 항목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는지 진단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후속 조치가 나올 리 없다.
최근 교육부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밝힌 교원평가 계획도 이렇다 할 비전이 없다. 대다수의 선량한 교사들은 교원평가가 중복돼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하고, 학부모들은 실효성이 없다고 불만이다. 평가자와 피평가자 모두에게 외면받는 평가로는 ‘등급 매기는 교사’를 말릴 길이 없다.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for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