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선 문화부 기자
김연아가 러시아 소치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이유 말이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봤듯이 김연아는 ‘예술적인’ 선수다. 당시 김연아는 은메달을 딴 일본의 아사다 마오보다 기술적인 부분이 중요한 쇼트프로그램에서 5점 정도 앞섰다. 하지만 예술성이 중요한 프리스케이팅에서 20점 가까이 이겨 압도적인 성적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긴 팔다리와 풍부한 표정이 그의 예술성을 높인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번에도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에서는 소트니코바를 0.28점 차로 근소하게 앞섰다. 하지만 프리스케이팅 점수에서 소트니코바에게 5점 가까이 뒤지며 2위에 머물렀다. 김연아는 프리스케이팅의 예술성을 따지는 프로그램 구성점수(PCS)에서 74.50점을 얻어 74.41점을 받은 소트니코바에게 근소하게 앞섰다. 결국 기술점수에서 뒤져 은메달에 그쳤다. 요컨대 자신의 강점인 예술성에서 상대를 압도하지 못한 게 패배의 원인이었다.
이처럼 예술은 관점에 따라 ‘제 눈의 안경’일 때가 많다. 남들이 아무리 좋다는 예술 공연도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독일 철학자 헤겔에 따르면 철학은 사유의 산물이지만 예술은 직관의 산물이다. 그래서 근대에 이를수록 예술에 진리가 담길 수 없게 됐다고 했다.
김연아는 2등을 하고도 겨울왕국의 여왕다운 ‘쿨함’으로 우리를 놀라게 했다. 4년간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 만족스럽지 않았을 텐데도 “금메달은 더 간절한 사람에게 갔나 보다”란 시인 같은 말을 남겼다. 하지만 어찌 아쉬움이 없었을까.
2등의 아쉬움으로 김연아의 예술세계는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원래 예술이란 고난과 시련으로 더 깊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청력을 잃고 악성이 됐고, 김정희는 유배생활을 통해 추사체를 완성했다.
2012년 베니스영화제에서 ‘피에타’로 최우수작품상을 탄 김기덕 감독도 마찬가지. 그는 아끼던 제자가 대형 영화사로 떠나간 뒤 분노와 배신감을 담은 ‘아리랑’을 선보였다. 이어 이런 감정을 용서로 승화시킨 ‘피에타’로 한국 영화 사상 가장 빛나는 업적을 이뤄냈다. 김 감독은 종종 어린 시절 가난과 젊은 시절의 방황이 영화의 밑거름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예술은 이렇게 시련 위에 피는 꽃이다.
민병선 문화부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