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세상을 바꿉니다]<2부>당신을 죽이고 살리는 말우리 아이를 바꾸는 ‘언어치료’
발달장애의 일종인 아스퍼거 장애를 가진 태민이(가명·오른쪽)가 20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아동발달센터에서 언어치료사가 들고 있는 표지판 카드를 보며 물음에 답하고 있다. 치료실을 둘러싼 벽장은 자연스러운 대화와 언어 자극을 유도하는 보드게임과 모형 장난감들로 가득하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태민이(가명·12)가 치료사가 들고 흔들던 표지판을 보고 툭 내뱉었다. 교통 표지판 카드를 뺏으려 몇 분간 승강이를 벌인 끝에 대답한 것이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 짧게나마 눈을 맞추기도 했다. 그때마다 치료사는 환하게 웃으며 칭찬을 했다. 태민이는 치료사와 나무 책상에 마주 보고 앉아 대화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20일 오후 취재팀이 방문한 서울 양천구 목동아동발달센터에선 서너 명의 아이가 각자 치료실에서 태민이처럼 언어치료를 받고 있었다. 13.2m²(약 4평)의 방은 보드게임과 퍼즐, 동화책이 가득한 벽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따금씩 치료실에서 “바바바” 하는 발음 연습 소리와 아이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언어치료는 ‘당신의 아이를 살리는 말’이다. 한국언어장애전문가협회에 따르면 전체 인구 대비 약 5%가 언어치료 대상자에 해당한다. 이 중 대부분은 말을 최초로 배우는 시기인 영·유아기에 나타나는 발달 단계 미숙인 경우로 폭력성, 정서 불안, 자폐 증상 등 정서적 문제를 동시에 가질 확률이 높다.
김범조 삼성사과나무정신과의원 원장은 “이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치료는 대부분 ‘관계 형성’에 관한 것이고 여기서 ‘언어’는 모든 치료의 매개가 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언어치료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영·유아 심리치료에서 말이 가지는 중요성을 영·유아 심리장애의 대표적인 양상에 따라 분석했다.
○ 마음을 두드리는 말
자폐증, 아스퍼거 장애 등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자신만의 세상에 갇힌 아동은 기본적인 언어 습득 단계로 되돌아가는 치료를 받게 된다. 이들에게는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고 △질문을 듣고 대답하고 △상황에 맞는 일상적 표현을 사용하는 연습을 주로 수행한다.
승환이는 간단히 구분하는 것부터 연습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색깔과 모양이 다른 카드를 놓고 어떤 것이 같은지, 어떤 게 무슨 색깔인지 말하는 연습부터 진행했다. 그 뒤로는 그림을 보고 설명하기, 설명 듣고 카드 맞히기 등 시간을 점차 늘려가며 언어치료를 진행했다. 몇 분 간격으로 엄마가 보고 싶다며 바닥에 드러눕곤 하던 승환이는 이제는 치료사에게 문장으로 의사를 전달할 만큼 향상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또래보다 조금 늦은 나이지만 승환이는 올해 국내 유치원에 입학한다.
한춘근 서울아동발달센터 대표는 “특히 자폐나 아스퍼거 증상을 보이는 아동들에게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언어 자극이 마음의 문을 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말의 규칙성이 행동의 규칙성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 입을 열어주는 말
산만한 아이의 경우 언어치료가 취학 이후 학업 부진을 개선시키기도 한다. 아이가 계산 능력은 좋지만 문장으로 설명된 수학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언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김범조 원장은 “사고력이 필요한 문제는 독해와 언어 능력이 중요하다. 언어치료로 성적이 오른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에는 7800여 명의 언어치료사 자격 취득자가 있다. 김형우 한국언어장애전문가협회 총무는 “언어치료란 단순히 인지적인 발달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자신을 표현하고 보호하는 수단을 되찾아 주는 것”이라며 “앞으로 국내에서 언어치료가 갖는 의미가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모진수 인턴기자 고려대 미디어학부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