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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균의 우울증 이기기]김연아가 마지막에 웃었던 진짜 이유

입력 | 2014-02-25 03:00:00


21일 열린 소치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메달 수여식에서 금메달을 딴 러시아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고있는 김연아. 소치=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류인균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장 약대 석좌교수

우리 연구팀은 과거에 메스암페타민(히로뽕) 투약을 한 적 있는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분들과 신뢰를 쌓기가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순대는 필자가 못 먹는 음식인데, 처음 만난 날 권해 주신 순댓국 한 그릇을 다 비우는 것을 시작으로 조금씩 신뢰를 쌓아 나갔다.

나중에 한 분은 내게 흉금을 터놓으며 “대체 마약이 무엇인가요? 어려운 얘기 말고 쉽게 알아듣게 좀 얘기해 주세요”라고 했다. 마약이 뇌 건강, 신체 건강에 미치는 위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필자도 이를 계기로 과연 마약이 주는 즐거움과 진짜 환희의 차이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실제로, 마약 투약 시 느끼는 고양감, 행복감은 마약이 없이 느끼는 진짜 기쁨과 겉모양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둘의 차이는 실제가 아닌 허상, 또는 환각 때문에 즐거움을 느끼느냐 아니면 현실에 기반한 즐거움이냐에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마약 또는 인터넷 중독, 쇼핑 중독 등의 중독이 진짜 기쁨과 다른 한 가지 분명한 특성이 또 있다. 마약이나 인터넷 또는 게임 중독, 담배나 술에 대한 의존, 쇼핑 중독이 주는 기쁨은 뒤이어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마약은 단 한두 번의 투약으로도 뇌 구조와 기능에 많은 손상을 줄 수 있다. 특히 충동을 억제하는 부위에 손상을 주기 때문에 충동을 억제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결국 중독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우리나라는 술에 관용적이어서 술은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알코올 중독 문제를 가진 분들뿐 아니라, 건강한 청년도 과음한 날 고해상도 뇌 영상을 찍어 보면 비록 일시적이긴 해도 뇌 손상이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게임이나 인터넷 중독 같은 약물이 아닌 ‘행동 중독’ 또한 뇌를 손상시킨다.

잠이 잘 안 올 때, 술을 마시면 잠이 들 수는 있지만 실제로 술은 수면 구조를 깨뜨리기 때문에 새벽에 깨게 되고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다. 반면, 꾸준히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것은 아무런 부작용 없이 꿀잠을 잘 수 있는 비결이다.

약물이나 술에 의존하지 않는 ‘진짜 기쁨’을 느끼려면 고통을 맛보아야 한다. 수만 번의 점프와 착지 연습을 하면서 몸이 부서지는 부상을 견딘 뒤 얻은 환희, 즉 메달을 따는 순간에 김연아 선수가 느꼈던 기쁨이야말로 ‘진짜 기쁨’이다.

우리도 가짜 기쁨이 아니라 진짜 기쁨을 느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부터 ‘올림픽 메달 급’ 노력을 하기는 쉽지 않다.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능력도 계발해야 할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작은 일부터 시작하고, 이 작은 일을 했을 때 자신에게 작은 보상을 해주는 패턴을 반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학생이라면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았을 때 공부 말고 수많은 다른 하고 싶은 일들이 떠오를 것이다. 게임도 하고 싶고,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기도 하고, 멀쩡해 보이던 책상이 지저분하다며 책상 정리를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다못해 안경이라도 닦고 싶어진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일들을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생각은 더 가지를 친다. 그럴 땐 작은 종이에 이 일들을 모두 적어 놓는다. 그리고 영어 단어 5개를 외우면 스스로에게 ‘아이스크림을 먹는’ 작은 보상과 작은 기쁨을 주는 것이다. 그러면 선(先) 작은 노력, 후(後) 작은 기쁨이 자꾸 짝짓기가 되면서 공부하는 습관이 점차로 길러지고 공부하는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행동 훈련(behavioral training)’이라 하기도 한다.

또 누가 알겠는가. 이렇게 작은 노력을 수만 번 반복했을 때 평범한 우리 중에서 올림픽 메달 급 성과가 나올지 말이다.

류인균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장 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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