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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카페]버핏 주주총회는 투자자들의 축제 마당인데…

입력 | 2014-02-26 03:00:00

한국선 31개사 같은날… 소액주주 막기 ‘꼼수’




정지영 기자

미국 중서부 네브래스카 주 동부에 위치한 인구 50만 명의 작은 도시 오마하는 매년 5월 축제의 도시로 변한다.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의 주주총회 때문이다. 사흘 동안 진행되는 주총에서는 실적 보고, 향후 사업방향 논의 외에도 주주들과 회사 경영진의 일문일답이 자유롭게 오간다. 지난해에는 버핏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말춤’을 춰 주주들로부터 큰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한국은 오마하보다 2개월 빠른 3월이 주총 시즌이다. 그런데 주총 시즌을 코앞에 둔 요즘 축제 분위기는커녕 주주들의 불만이 거세다. 삼성그룹 12개 계열사와 현대자동차그룹 7개 계열사, LG그룹 7개 계열사가 약속이나 한 듯 다음 달 14일 오전에 주총을 열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날은 ‘주총 데이’나 마찬가지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정기 주주총회일을 공시한 10대 그룹 소속 12월 결산 상장사 35개 가운데 무려 31개사(88.6%)가 다음 달 14일에 주총을 열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10대 그룹 두 개 이상의 계열사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는 주총에 참가하고 싶어도 한 곳만 찍어서 참석해야 한다.

주총에서는 이사 선임안이나 정관 변경 같은 내용이 결의된다. 마음에 안 드는 이사 선임에 반대하거나 배당금을 정하는 일에 소액주주가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로 ‘한날 동시 주총’이 열리면 이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물론 동시다발적 주총을 여는 기업들의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바도 아니다. ‘한날 주총’이 시작된 건 주총꾼이 물의를 빚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다. 시민운동을 내건 사람들이나 뒤로 금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무리로 몰려다니며 주총 의사진행을 방해하면서 주총장은 수시로 난장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에 전자투표제 의무화가 들어 있을 정도로 소액주주의 권리는 중요하다. 인터넷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게 돼 있는 전자투표제는 소액주주가 시공간적 제약 없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지만 대부분의 기업이 아직 도입하지 않았다.

기업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비용문제와 의사결정의 비효율성이다. 하지만 귀찮다고, 비용이 든다고 기업 경영에 일부 대주주의 목소리만 반영해야 할까. 기업과 투자자가 모두 즐기는 축제와 같은 주총이 한국에서도 열리길 기대해본다.

정지영·경제부 jjy20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