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 소설가
“집이 일산이면 대곡역 부근도 잘 아시겠어요?”
강변북로에서 자유로 입구로 진입하기 직전, 대리기사가 그렇게 물었다.
김상국 씨는 술이 좀 오른 상태였지만, 그 와중에도 대곡역 근처 풍경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대곡역 주위는 다른 역들과 달리 온통 논과 밭뿐인 곳이었다.
“제가 얼마 전에 손님을 모시고 그쪽으로 간 적이 있었는데… 조금 기이한 경험을 했지 뭡니까? 어떻게,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대리기사는 그러면서 자신이 만난 낯선 고객 이야기를 김상국 씨에게 해주기 시작했다.
“양재역 근방에서 만난 손님이었는데, 거기에서 대곡역까지 가자고 하더라구요. 한데 이 양반이 한눈에 딱 봐도 시골 노인네 모습 그대로였죠. 술은 억병으로 취해 있고… 우스운 건 이 양반 차가 트럭이라는 거였어요. 왜 거 있잖아요, 뒤에 파란 천막이 쳐 있는 일 톤짜리 낡은 트럭.”
“뭐, 어쩌겠어요. 손님 차가 트럭이 아니라 버스라도 가라면 가야죠. 어쨌든 그렇게 손님을 옆에 태우고 대곡역까지 갔는데… 그때부터 문제가 생긴 거예요. 이 양반이 술에 너무 취해서 도통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 참 난감하더군요. 주위는 가로등 하나 없이 깜깜한데, 민가도 없고, 온통 논뿐이니….”
“그래서 어쩌셨습니까?”
김상국 씨는 상체를 조금 앞으로 숙이며 물었다.
“한참을 그러다가 손님 잠바 주머니를 뒤졌죠. 다행히 핸드폰이 있더라구요. 거기 전화번호 목록을 쭉 보니까 ‘사랑하는 아들’이 있기에 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랬더니 한 삼십 분쯤 뒤던가 오토바이를 끌고 한 사십 먹은 사내가 나오더라구요.”
“다행이네요, 그래도.”
“그게 그렇지가 않더라구요. 사내는 트럭 밖에서 힐끔 술에 취해 잠든 손님 얼굴을 바라보더니 ‘우리 아버지가 아니네요’ 하곤 다시 돌아가 버렸습니다.”
“저런… 거 참.”
“손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아들이 맞겠지요?”
“핸드폰 번호가 떴으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그러니까 오토바이를 타고 나온 걸 테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마 삼십 분쯤 오토바이를 타고 나온 거겠죠.”
김상국 씨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면 그 뒤엔, 그 뒤엔 어쩌셨습니까?”
김상국 씨가 그렇게 묻자, 대리기사가 룸미러를 향해 슬쩍 웃으면서 말했다.
“어쩌긴요? 혼자 나올 방법도 없고, 손님을 그대로 놔둘 수도 없어서, 거기에서 손님 깰 때까지 기다렸지요. 우리 나이가 되면 같은 처지의 노인네 잠든 모습만 봐도 짠해지거든요.”
“그러셨군요.”
“한데, 더 우스운 것은요, 새벽 무렵 잠에서 깬 손님이 저를 조수석에 태운 채 대곡역까지 나왔다는 겁니다. 이 길은 자신이 잘 안다고 하면서….”
“역시나 자주 왔던 길인가 봅니다.”
“제가 헤어지기 전에 조심스럽게 사는 곳이 어딘지 물었더니, 손님이 엉뚱하게도 아침이나 자시고 가라면서 내 손을 이끌고 트럭 뒤로 갑디다. 그러고 거기 천막을 걷었더니… 그 양반 집이 바로 거기더군요. 거기 앉아서 라면을 먹고 나왔습니다.”
“그럼, 선생님은 제대로 손님을 모셔다 드린 게 맞네요. 어쨌든 집은 집이니까.”
“그러게나 말입니다. 집을 이고 다닌 줄도 모르고 집을 찾았으니…. 자, 이제 다 왔네요.”
대리기사는 김상국 씨의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뒤, 차 키를 건넸다. 김상국 씨는 그와 인사를 한 뒤 뒤돌아 아파트 단지를 한 번 바라보았다. 거기에 딱딱한 모습으로, 그의 집이 버티고 서 있었다.
이기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