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대단지인데 전세는 씨 말라… 최소 두달 기다리래요”

입력 | 2014-02-27 03:00:00

불안한 전월세 시장 르포




온통 월세안내… 전세는 딱 1건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앞에서 한 중년 남성이 부동산 시세를 살펴보고 있다. 전세 안내는 한 건뿐이고 ‘즉시 입주 가능’이라고 쓰인 월세 안내가 대부분이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000채가 넘는 대형 아파트 단지인데 전세물량은 달랑 3채 나와 있어요. 두 달 넘게 기다려야 전세를 확보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25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 은행사거리 앞에 밀집한 부동산중개업소들은 신학기를 맞아 전세를 구해 달라는 고객들의 전화에 응대하느라 쉴 새 없이 바빴다. 신은정 부동산써브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도 짤막하게 현재 상황을 설명한 뒤 다시 전화기를 붙잡았다.

이 일대는 초중고교 및 학원들이 밀집해 있는 강북의 대표적 학원가로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지역이다. 전세 수요가 넘치지만 전세 물건은 씨가 말랐다. 청구3차 전용면적 85m² 아파트 전세금은 지난해 11월 3억6000만 원에서 현재 4억1000만 원으로 오른 상태다. 김유민 부동산월드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전세는 (나오자마자) 바로 빠지기 때문에 인터넷사이트에 올릴 여유도 없다”며 “전세를 구하다 월세를 계약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 끝 모르는 전세난

서울 아파트 전세금이 사상 최장 상승기록을 매주 갈아 치우면서 전세를 구하는 사람들의 입은 바짝 마르고 있다. 전세를 선호하는 세입자와 달리 집주인은 월세를 원하는 경우가 많아 임대주택 시장은 수요와 공급에서 심한 불균형 상태에 놓여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사는 이화성 씨(44·여)는 “집주인이 월세로 전환한다고 해 4월에 다른 전셋집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데 두 달째 전세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며 “자녀 교육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사 가기는 힘들고 부동산에서 연락이 올까 전화기에서 눈을 못 떼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전세보다는 월세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자 전세 세입자들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사는 송모 씨(79)는 “안 그래도 전세물량이 적어서 불안한데 정부가 월세 지원으로 방향을 튼 것 같아 전세 씨가 더 마를 것 같다”고 말했다.

전세난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달 부동산시장 모니터링 그룹 전문가 12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발표한 ‘부동산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78.0%가 올해에도 전세난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장재현 부동산뱅크 팀장은 “올해 입주 예정 물량 중 상당수는 보금자리주택이라 신규주택 공급이 부족해 전세수급 불안정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26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금은 지난주 0.18% 오르며 지난해 8월 17일 이후 77주째 상승세를 이어갔다. 2009년 1월 30일부터 2010년 3월 19일 사이였던 최장 상승기록(60주 연속 상승)을 깬 지 오래지만 상승세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말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금은 3억1265만 원으로 2012년 말 2억7767만 원보다 3500만 원가량 올랐다. 같은 기간 수도권 아파트 평균 전세금도 2억2409만 원으로 약 2800만 원 뛰었다.

○ “그래도 월세는 싫어”

집주인들이 전세를 빠르게 월세로 전환하면서 월세 공급이 급증하고 있지만 ‘월세 시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입자도 많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J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전세가 나왔냐는 문의전화가 하루에 10건 이상 오지만 전 면적대에서 물량이 달린다”며 “수요가 월세로 바로 전환되지는 않아 월세 거래는 한 달에 한두 건 정도에 그친다”고 말했다.

실제로 월세를 내면 전세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든다. KB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 기준으로 세입자가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면 연평균 577만 원을 더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3억 원짜리 주상복합아파트에서 전세를 살다가 보증금 2억 원에 월세 120만 원짜리 아파트로 이사 간 이모 씨(38)는 “전세는 구하기 힘들어 남편과 상의해 결정을 내렸는데 매달 나가는 돈이 크다 보니 자녀 교육비와 외식비를 줄일 수밖에 없게 됐다”며 “빚을 갚으며 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아직 시장에는 전세를 선호하는 사람이 더 많은 과도기인 만큼 전세주택 공급도 늘리면서 월세시장을 서서히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준일 jikim@donga.com·김현진 기자
최선재 인턴기자 건국대 법학과 4학년
이원진 인턴기자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4학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