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문화부 차장
고가도로를 철거하는 이유는 교통 흐름을 방해하고, 도시 경관을 훼손하며, 낡아서 유지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건설할 때는 근대화의 상징이었으나 이젠 쓸데없이 예산만 축내는 흉물이 돼버렸다. 이는 산업유산이 맞이해야 하는 공통된 운명이다. 공장이나 제철소처럼 가동이 중단된 산업유산의 처리는 모든 선진국이 안고 있는 난제인데 철거보다 재생 쪽에 무게를 두는 추세다. 얼마나 창의적인 해법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흉물이던 구조물은 매력적인 랜드마크로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도심의 공중에 설치된 산업유산으로 재생에 성공한 사례가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과 프랑스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이다. 하이라인은 1934년 맨해튼 공중을 가로질러 건설된 화물 수송 열차노선이었다. 열차의 운송 비중이 낮아지면서 퇴물 취급을 받다가 1990년대 말 철거 결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인근의 주민들이 공공 용도로 쓰자는 제안을 했고, 뉴욕 시는 널리 아이디어를 구한 끝에 1.6km 길이의 공원을 조성해 2009년 개장했다. 지금은 꽃과 나무, 산책로와 벤치, 카페가 있는 맨해튼의 명물이 됐고 주변 땅값도 크게 올랐다고 한다.
우리도 상상해보자. 고가도로 위에 조성된 공원에서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모습을 말이다. 위에서 전망을 살피면 도심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것이다. 도심에 새로운 녹지를 확보하기가 어디 쉬운가. 철거로 인한 폐기물 처리 걱정도 없으니 친환경이라는 시대정신과도 맞다. 무엇보다 도시의 나이테를 지우지 않아서 좋다. 2003년 철거된 청계고가로의 광교∼청계천∼용두동 노선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워커힐 왕래를 쉽게 하기 위한 길이었다고 한다(손정목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최고 권력자를 위해 만들어진 길이 시민들의 산책로가 됐다면 이보다 더 생생히 민주화를 체감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김정후 박사(도시사회학)는 “재활용을 통해 만족할 만한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새로 짓는 것보다 몇 배의 노력이 든다. 쇠퇴한 산업유산을 성공적으로 재활용하는 과정은 사회가 성숙한 논의와 협의 과정을 이뤄가는 훈련”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15개의 고가도로를 철거했고, 나머지 85개도 형편을 봐가며 철거하겠다고 했다. 이 중에는 공원으로 조성해도 좋을 곳이 있을 것이다. 철거냐 재생이냐를 결정하는 데는 인근 지역 주민의 재산권까지 많은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흉물이라고 없애려고만 하지 말고 고쳐 쓸 수는 없을지 시민들에게 다양한 아이디어를 구했으면 한다.
이진영 문화부 차장 ecolee@donga.com